과학적 정보 수집 대화법
제가 몇 달 전부터 클래스101에서 과학적 정보 수집 대화법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인터뷰에 대한 글도 몇 번 썼고, 오프라인 공개 강연도 두어 번 했는데 사실 저는 기업 대상 컨설팅 및 코칭을 주로 하다 보니 일반인들이 이런 내용을 심도 깊게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인터뷰했다고 하는 것들을 보면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커서 이번에 작정하고 만들었습니다.

제목을 풀어보면 어떤 강의인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과학적 : 그냥 경험담이나 뇌피셜을 푸는 게 아니라 객관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 방법들을 다룬다는 뜻입니다.
  • 정보 수집 : 잘했다 못했다의 기준은 얼마나 가치있는 정보를 얼마나 많이 얻었나로 따지게 됩니다. 그래서 무엇이 더 효과적인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 대화법 : 기본적으로는 구두를 통한 대화로 이 정보 수집 활동이 이루어지는 걸 의미합니다. 물론 이 내용들을 토대로 이메일, 채팅 등에 확대적용 가능합니다.
채용 인터뷰나 전문가 인터뷰, 사용자 인터뷰부터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궁금한 걸 묻기 등을 현재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으로 개선할 수 있습니다. 근데 사실 후기를 보면 팀장이 팀원 코칭을 더 잘하려고, 애인/가족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법적분쟁에서 더 현명한 액션을 취하려고, 업무 중 학습능력을 높이려고 등 정말 다양하게 활용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혹시나 이런 내용이 정리된 책이 있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 아직 없습니다. 제가 다음 전문분야들을 직접 연구해서 통합한 내용입니다.
  • 심리상담학에서 공감과 신뢰
  • 인지심리학에서 마음 이론(theory of mind)
  • 범죄수사학의 증인면담, 포로심문
  • FBI의 위기상황협상론
  • 자연주의 의사결정론
  • 심리언어학
  • 전문성 연구
몇 개의 강의를 무료로 오픈해 두었기 때문에 한번 가서 보시면 좀 더 감이 오실 겁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우리가 평소하는 질문들을 좀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통은 내가 하는 질문들을 더 개선할 여지가 있다는 걸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이 글을 보시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당신이 업무하면서 저지른 최악의 실수는 무엇인가요?

채용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이 훌륭한 질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던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적어도 대여섯 가지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이 잘못된 이유가 있다면 뭘까요?

  1. "저지른" : 부정적 함의가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러면 상대는 여기에 답을 하기가 조심스러워집니다. 부정적인 걸 정상(norm)으로 느끼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따라서, 저 질문을 하기 전에, 예컨대, "일을 하다 보면 늘 실수가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등으로 실패를 정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고, "저지르다" 등은 빼는 것이 좋겠습니다. (심문interrogation에 대한 연구 참고)
  2. "최악의" : 인터뷰에서 최상급을 넣은 질문은 인터뷰 초보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입니다. 왜냐하면 최상급에 답하기 위해서는 인지적 부하가 너무 심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 질문에 답하려면, 1) 여러 실수들을 상기해야 하고 2) 그 실수들을 상호 비교해야 하며 3) 그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고 4) 그 하나를 설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인지적 단계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는데, 통상 인터뷰이가 여유있게 답하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실패하는 인터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 단계를 점프해 버리고 가짜 답안을 내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리고 인터뷰어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설문 조사의 인지적 작업 분석에 대한 연구 참고)
  3. "무엇인가요?" : 질문의 시제가 답변의 시제를 유도한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현재형으로 물었습니다. 이러면 답도 현재형으로 나오기 쉽고 과거의 기억을 상기하는 노력을 잘 안하게 됩니다. 그러면 거짓말(의도했건 아니건)이 나올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시제를 과거형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니면 아예 시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도 좋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는 어떤 것이 있었나요?" (증인 면담eyewitness interview에 대한 연구들 참고)
  4. "무엇인가요?" : 명확하게 왓(what)을 물은 느낌이 듭니다. 닫힌-열린(closed-open) 스펙트럼에서 비교적 닫힌에 가까운 질문입니다. 질문이 명확하면 답도 명확하게 나올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보통의 인터뷰에서 스트레스가 높다는 겁니다. 그러면 흐릿한 생각을 말을 못하고 그냥 명확하게 거짓말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약간 어중간하게 묻는 게 좋습니다. "~는 어떤 게 있을까요?"나 혹은 "실수라면..."하면서 말을 끝맺지 않는 거죠. 인터뷰에서는 인터뷰이가 모호하게 느끼는 것(즉 자신이 머리속에서 아직 괄호를 닫지closure 않은 거)을 말하게 하는가 아닌가가 그 질을 판가름합니다. (상담학에서의 연구들 참고)
  5. 실수"" : 단일한 걸 묻는 거보다 복수개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것이 통상 더 많은 답변을 끌어냅니다. 대부분의 인터뷰는 정보를 많이 끌어내서가 아니고 적게 끌어내서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정보를 더 많이 얻기 위해 복수개를 암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면에서 "최악의"도 빼는 게 좋습니다. 우리말은 복수 구분을 잘 하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복수개가 있다는 암시를 넣는 게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작은 거라도 떠올리게 하고 나면 더 기억이 날 것입니다. (역시 증인 면담에 대한 연구 참고)
  6. "당신이 업무하면서" : 이 말은 불충분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부정적인 사건을 평범하게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이 말은 아무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합니다. 예컨대, "업무하다 보면 실수라는 게 생기기 마련이잖아요"로 시작을 했으면 좋았을 겁니다. 이런 경험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전제로 하고 질문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런 경험은 드물고 예외적이라는 암시가 있으면 상대는 답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집니다. 모 연구에서 학생들을 두 개의 반에 무작위 배정하고, 거의 비슷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이 여름에 대해 아는 단어들을 적으시오"/"당신이 여름에 대해 이미 아는 단어들을 적으시오". 이러면 학생들의 응답이 달라집니다. 후자의 질문에 대해 학생들은 더 많은 단어를 생각해 내게 됩니다. 두 질문의 차이는 "이미"(already)의 유무입니다. "이미"가 있을 경우 학생들은 기억 탐색에 더 많은 노력을 들입니다. 특히 묻고자 하는 경험에 사회적으로 부정적 함의가 있다면 일종의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비슷한 맥락입니다.


이런 분석을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맞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특히 그 말이 나를 유리하게 혹은 불리하게 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클래스101 강의를 통해 이런 부분에 대해 눈을 뜨는 기회를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특히 그냥 동영상 강연만 보는 게 아니라(사실 동영상 강연의 교육 효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 이메일이나 전화 코칭이 가능한 옵션이 있는데 되도록 전화 코칭을 선택하실 것을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꺼리 하나를 드립니다. 다음 추천사항 중 근거를 통해 거짓으로 밝혀진 것은 무엇일까요?
  • 되도록 명료한 질문이 좋다.
  • 같은 시간이라면 많은 질문을 한 인터뷰가 좋은 인터뷰이고 질문이 적으면 좋지 않다.
  • 피면접자가 인터뷰 중 바로 바로 답했다면 좋은 것이다.
  • 피면접자가 인터뷰 동안 편안하게 느꼈다면 좋은 것이다.
  • 되도록 사전에 질문을 모두 준비하는 것이 좋다.
  • 왜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
  • 면접자가 인터뷰에 능숙해 보이는 것이 좋다.
  • 면접자가 전체 인터뷰를 리딩해줘야 한다.
  • 될 수 있으면 피면접자의 생각과 의견을 많이 들어야 한다.
답은 "전부"입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20/05/06 13:29 | 트랙백 | 덧글(1)
트랙백 주소 : http://agile.egloos.com/tb/593492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탐구자2 at 2020/05/22 21:57
폴리아의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가'에서 발문의 중요성을 설명한 이후로 이렇게 질문의 의미를 명쾌하게 알려주는 글을 더 읽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도 배워갑니다.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