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 : 평범에서 비범으로
제가 지난달에 을 한 권 번역해 냈습니다. 아래에 번역자 후기 초고를 옮깁니다.

안녕하세요. 이 책을 번역하게 된 역자입니다. 먼저 이 책을 번역하게 된 인연 이야기로 후기를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2010년 윌리엄 더건의 <전략적 직관>(Strategic Intuition)이라는 책을 읽고 그에 대해 개리 클라인과 이메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더건은 그 책에서 "전략적 직관"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개리가 연구해온 직관과는 달리 새로운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이었고, 좀 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었습니다. 개리는 더건이 말하는 "전략적 직관"을 자신은 "통찰"로 부르고 싶다고 말하며 이것이 중요한 주제이고, 그래서 더건과 협력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통찰이란 아이디어에 정말 흥분이 되었습니다. 개리의 연구를 제 일(개인과 조직이 성장하게 도와주는 일)에 좀 더 적용할 수 있는 잠재성이 훨씬 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에 싱가포르에서 통찰 관련해 워크숍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앞뒤 볼 것 없었습니다. 싱가포르로 가서 개리를 직접 만났고 그와 함께 최근 연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걸 계기로 접한 것이 그의 "통찰의 자연주의적 연구"(A Naturalistic Study of Insight)라는 논문이었습니다. 지난번 더건의 책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더 발전시킨 것이었습니다. 그 논문은 저에게 많은 통찰을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2013년 4월(이 책은 당해 6월 출간), 개리와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일전에 그의 한국어 번역물들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바 있었는데, 이번엔 그가 저에게 번역을 권했습니다. 영광스러운 기회라고 생각했고 또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개리의 연구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아는 사람이 번역을 해야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있었죠. 그래서 개리가 에이전트를 통해 국내 번역 판권을 가진 출판사에 저를 추천했고 몇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후 제가 번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개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훨씬 예전입니다. 개리를 (간접적으로) 만난 것은 그의 첫번째 저술인 <Sources of Power>(<인튜이션>으로 번역)을 통해서였습니다. 2001년이었네요. 그 책은 참으로 재미있었고, "여기에 뭔가 중요한게 있다"는 느낌을 줬습니다만 제 일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러고는 2006년 그의 <Power of Intuition>을 읽었고, 2009년 초에는 <Working Minds> 그리고 2009년 9월에 <Streetlights and Shadows>(<이기는 결정의 제1원칙>으로 번역)를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 사이에는 그가 쓴 논문과 보고서들을 찾아서 탐독했지요. 이렇게 그에 대한 관심은 점차 자연주의 의사 결정 학파 전체로 넓어지게 되었고, 관련 연구를 더 심층적으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의 연구를 제가 하는 일 전반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주의 결정 분야에 대한 저의 관심사는 제가 이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전문성 연구라고 하는 분야와 만나고 합쳐지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전문성 연구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무엇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전문가가 되는지를 연구하는 인지 심리학의 전문 분야입니다.

이렇게 제 머리 속에서 자연주의 의사 결정과 전문성 연구라는 주제가 서로 맞잡게 된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휴리스틱과 편향 연구자들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밝히고 그들을 조소하기 위해 애쓰는 듯 보였습니다. 이에 반해 자연주의 의사 결정 연구자들은 전문가들이 얼마나 놀라운지 밝히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전문성 연구에서는 후자와 비슷하게, 전문가의 능력은 분명 차별성이 있으며 대단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렇게 되는 독특한 과정을 중요하게 연구합니다.

특히, 이 전문성 연구에서 근래 주목을 받는 주제 중 하나는 적응적 전문성(adaptive expertise)입니다. 이는 반복적 전문성(routine expertise)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반복적 전문성이 한 가지 작업을 계속 반복하여 전문가가 되어 동일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더 빨리, 또 실수가 적게 수행하는 걸 말한다면, 적응적 전문성은 기존에 접하지 않은 문제 상황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내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저는 개리의 직관 개념이 반복적 전문성에는 잘 들어맞지만, 적응적 전문성과는 뭔가 딱 맞는 느낌이 안 들어서 이에 어울리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개리의 통찰에 대한 연구를 만나면서 몇가지 힌트를 얻었습니다 -- 적응적 전문성은 통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연구를 잘 버무려서 제가 하는 일인, 조직과 개인이 스스로를 성장시키게 돕는 일에 적용하게 되면 큰 진전을 이룰 수 있겠다 싶었고 여러가지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통찰과 전문성 연구를 제 일에 적용했던 사례를 하나 소개하자면, 모 통신사 전화 고객상담 센터에서 컨설팅하던 때에 있었던 일로, 전화상담사가 상담 중에 통찰을 얻게 도와주는 실험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고객이 어떤 문제가 있다고 전화를 했을 때 그 이유가 고객 자신은 물론 상담사도 전혀 생각 못 한 것일 수 있는데, 이런 통찰을 증진시켜주는 교육을 하고 그 효과를 대조군을 두어 검증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고객이 통화가 안 된다고 불평을 하는데, 사실은 전화기가 비행기 모드일 수 있다든지 하는 발상은 통찰이 필요한 것입니다. 실험 결과 이런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은 개인차가 있으며(뛰어난 전문가가 있으며) 또 그 능력을 훈련을 통해 증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통찰과의 연결성을 탐구해 왔습니다. 전혀 동떨어져 보이는 연구들인데 사실 통찰과 맞닿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의 사회 심리학 교수인 제임스 펜베이커(James W. Pennebaker)는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글을 쓰는 것(저널, 일기, 에세이 등)의 효과를 연구했습니다. 연구 결과 글쓰기는 면역기능이 강화되며, 혈압이 떨어지고, 우울감이 줄어들고 기분이 좋아지며, 정신/육체적 건강의 전반적인 향상이 있고, 부부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이런 효과는 200개가 넘는 연구를 통해 검증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 간에 이런 글쓰기의 효과에 차이가 있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더 이득을 보는가를 알기 위해 사람들이 쓴 글을 컴퓨터로 분석했습니다.

그의 발견 중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첫째 주된 대명사가 자주 바뀌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예를 들면, "나"로 시작하는 문장이 많다가 "그녀는"으로 바뀌고 다시 "나"로 바뀌고 하는 식으로 글을 쓰는 도중(혹은 여러 날에 걸쳐 글을 쓰면서) 시각이 다양하게 바뀔 수 있으면 그 글을 쓴 사람은 정신적/육체적 이득이 더 컸습니다. 또 하나는 인과관계 단어와 자기반성적 단어의 사용 증가입니다. 인과관계 단어란, "왜냐하면", "그 결과", "그이유는" 등을 말합니다. 자기반성적 단어란 "생각한다", "믿는다", "깨닫는다" 등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과관계 단어나 자기반성적 단어가 많냐가 아니라, 점점 증가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즉, 점차적으로 자기 경험에 대한 의미있는 이야기를 구축해 나가는 의미형성(sensemaking)의 경우에 거기에서 얻는 정신적/육체적 이득이 크다는 겁니다.

저는 이 연구결과가 통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자신의 경험에 대한 통찰 말입니다. 통찰을 얻으려면 결국 새로운 이야기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으로 상황을 해석해야 합니다.

심리상담의 경우를 보면, 근래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심판근거 인지치료(Trial-based Cognitive Therapy)가 통찰이라는 면에서 흥미롭습니다. 심판근거 치료에서는 내담자가 자신을 피고로 두고, 변호사, 검사, 판사, 그리고 피고 자신의 역할을 돌아가며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연구를 통해 이 치료 방법이 내담자의 생각을 전환하게 하는 데에 (통상 자신이 갖고 있던 자동적 사고와 핵심 믿음을 더 유연한 것으로 바꾸는 데에) 효과가 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역시 많은 근거로 뒷받침 되고 있는 동기면담(Motivational Interviewing) 경우, 양가감정(ambivalence)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상담법은 중독 치료에서 발전된 것인데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인 사람에게는 술을 먹고 싶은 마음과 끊고 싶은 마음이 공존합니다. 이걸 양가 감정이라고 하며, 이 양가 감정에 대해 내담자가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 통찰이 생기고 결심이 서며 추후 행동변화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반면 술을 끊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만 상담이 진행되면 내담자는 강하게 저항을 하게 되어 추후 실제적인 행동변화나 유지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제가 예를 든, 펜베이커의 연구나 심판근거 치료, 동기면담 등 모두 통찰에서의 다양한 시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을 볼 때에, 세갈래 경로 모형 자체가 우리에게 다양한 시각을 주어 통찰을 도와주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세갈래 경로 모형에서 어느 경로가 이 상황에서 나에게 통찰을 줄 것인가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통상 사후에 알게 되는 것이죠. 그럴 경우에 저는 이 세 가지 경로 모두에 가능성을 열어 두고, 다양한 시각과 경로를 함께 고려해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서 14장 "우리 자신을 돕기"를 보시면 좀 더 와닿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조직 수준에서 통찰을 진작하는 것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조직을 컨설팅 하면서 느낀 것은, 개리가 말했듯이 많은 조직들이 완벽성 함정에 빠져서 실수를 낮추는 화살표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의 마이클 프레제(Michael Frese) 교수의 실수 연구를 엿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실수에 대해 두 가지 문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실수 예방과 실수 관리가 그것인데요, 실수 예방은 실수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실수 관리는 실수는 어떻게든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며, 그렇기에 실수를 일찍 발견하고 빨리 교정하여 부정적 결과를 줄이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 결과 실수 예방은 실수에 대해 비난하고 그걸 감추는 문화가 생기며, 실수 관리는 실수를 공유하고 거기에서 학습하는 문화가 생깁니다. 관련 연구를 보면, 조직의 문화가 실수 관리에 가까울수록 조직의 혁신성이 높으며 수익률도 높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저는 이 실수 관리 문화와 실수 예방 문화의 짝이 퍼포먼스 공식의 위 화살표와 아래 화살표의 관계랑 유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수 예방 문화에서 실수 관리 문화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제 경험을 미루어 보면 사람들이 통찰을 갖게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고 강제한다고, 또 공식적 규정을 추가한다고 해서 문화는 바뀌지 않습니다. 조직이 바뀌려면 결국 사람들의 생각과 믿음이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15장 "남을 돕기"는 16장 "우리 조직을 돕기"를 위해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통찰 능력을 높이기 되기 위해서는 접하는 통찰들을 분석하고 자신의 통찰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합니다. 단순히 반복한다고 해서 고수가 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양치질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수십년 반복해 올 뿐이지 자신의 양치질을 의도적으로 분석하고 개선하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십년 매일 반복했어도 실력이 거의 늘지 않는 것입니다. 전문성 연구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수행을 분석하고 약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의도적 수련"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거의 분야를 막론하고 이 의도적 수련이 필수적임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통찰에 대한 의도적 수련을 만들어 나날이 계속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참고로 저는 자신의 통찰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통찰 저널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관련해서는 17장 "통찰 사냥꾼이 되기 위한 팁"이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 과정에서 고마웠던 분들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번역문을 교정하고 다듬어 준 아내 남승희씨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 수고에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글이 훨씬 읽기 좋아졌습니다. 또 오랜 기간 인내심을 갖고 번역을 기다려준 출판사의 박나미, 김효선님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과 용어가 등장하는 책인지라 감수를 도와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의료와 생물 분야는 서울대학교 RNA 생물학 연구실의 장혜식 박사가 감수를 해주었고, 군사 및 정보 분야는 국내 아마추어 군사학 연구자로 정평이 나있는 삼성경제연구소 채승병씨가 감수를 꼼꼼하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채승병씨 경우는 원서에 나온 나폴레옹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오류를 찾아내 주어, 저와 개리, 콜롬비아 대학의 윌리엄 더건(William Duggan) 교수, 해군 대학의 브루스 구드문선(Bruce Gudmundsson) 교수, 또다른 아마추어 군사학 연구자인 민신현씨 등과 함께 오랜 기간 논의를 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개리가 해당 장의 내용을 상당 부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성심을 다한 감수 과정에 감사드립니다. 또 번역 과정 중 원서의 자잘한 오류를 몇 가지 수정하기도 했는데 바쁜 일정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준 개리에게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귀한 책을 준 개리 클라인에게 늘 스승으로 또 동료로 감사해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저와 마찬가지로 이 책과 개리를 통해 통찰로 가는 길들을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4년 11월 24일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5/02/24 11:54 | 트랙백 | 핑백(2)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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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4번은 예컨대 이런 경우를 말합니다. "어? 아까는 만족스러워하더니 피드백에는 안좋은 점수를 줬네? 실수한 거겠지" 인지심리학자인 게리 클라인은 자신의 책 통찰 : 평범에서 비범으로에서 예외의 사건을 대충 얼버무려 버리는 것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연구에서는 통찰을 얻는 사람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가 예외를 "어라? ... more

Linked at 애자일 이야기 : 문재인 대통.. at 2017/05/29 11:44

... ... more

Commented by dobiho at 2015/02/24 15:27
바로 주문했네요. 읽을 수 있게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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