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배워도 못하는가 2 : 전문가에 대한 미신
지난번 왜 배워도 못하는가? : 뛰어난 선생에 대한 미신에 이은 2탄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안다고 해도 다 전달하지 못하며, 더 나아가 작은 부분(30%)만 전달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번에는 전문가의 사회성이라는 측면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한 예로 테스트 주도 개발(TDD)이라는 프로그래밍 기법을 생각해 봅시다. TDD가 뭔지 모르시는 분들은 그냥,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더 효과적으로 하게 도와주는 프로그래밍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갑시다. 일반적인 TDD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기대하는 과정은 보통 이럴 것입니다.

  1. TDD를 제대로 이해하고 조직에 돌아가서
  2. (나 스스로 TDD를 제대로 실천해서 객관적 성과를 내서)
  3. TDD가 좋다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4. TDD를 가르쳐 준다
  5. 모두가 TDD를 열심히 해서
  6. 좋은 성과를 낸다


여기에서 보통 문제가 되는 부분은 3, 4, 5, 6번입니다. 그리고, 1과 2를 잘 한다고 해서 3번 이후가 꼭 쉬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육에서는 보통 1번에만 집중을 합니다. 실무로 돌아가면 흔히 접하는 문제는 예컨대 다음과 같습니다.
  • 회사로 돌아가서 실제 업무를 하려고 하는데 상사나 동료의 지원없이 추가적으로 하려니, 시간 압박으로 나중에 해도 될 일로 미뤄지다가 결국 적용하지 못하게 된다거나,
  • 팀원/팀장들에게 전파교육하려 하지만 정작 팀원/팀장들 가운데 몇몇은 왜 해야 하는지 필요성도 못느끼는 상태에서 강제로 해야 하는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부작용이 생긴다거나(그래서 결과적으로 TDD는 안된다는 평가가 나오거나),
  • 팀 내에서는 열심히 적용을 했으나 지원해주는 임원이 없어 확대 적용에 실패하고, 조직 내에서 별난 문화로 치부되어 축소되어 버리거나,
  • 다른 부서는 그런 거 없이도 잘 하는데 너희는 왜 그런거 하면서 제때 아웃풋이 안나오냐며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상사나 협력 팀의 리더와 갈등을 겪는다거나,
  • 기술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주변에 물어 볼 사람이 없고, 인터넷 검색하는데 몇시간씩 보낸 후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해서 포기하거나,
  • 회사에서 다른 업무를 처리하느라, TDD 적용을 집으로 가져와 밤 늦게까지 좀 해보려 했더니, 부모님/형제자매/아내/아이 등의 가족들의 여러 요구로 인해 집중할 수 없어 화를 내거나, 가족의 요구대로 하느라 TDD는 시작도 못하거나, 그냥 포기하고 잠을 자버리거나,
이런 문제들은 보통 사회적 측면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간략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논리입니다.
  1. 아무리 기술적인 실천법이라고 해도
  2. 그 기술은 사회적 맥락 속에서 실천되어야 하며
  3. 그 기술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기술이 함께 필요하다
팀원들이 맘에 안들고, 그들도 나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 상황에서 타개책으로 TDD 같은 기술적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는 무엇을 골라도 실패가 보장된 것과 같습니다.

어떤 기술적 실천법이라고 해도 그걸 현실에서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설사 나 혼자 하는 실천법이라고 해도 말이죠 -- 예컨대 상사가 내가 하는 걸 보고 반대하면 그를 설득해야 하며, 하다가 모르는 것이 생기면 주변에 물어봐야 하는 등.

응용통계학자 출신인 존 가트맨은 자신의 책 "신뢰의 과학"에서 다음 연구를 인용합니다.

남편과 부인은 서로 신뢰가 깨어져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인데, 그 날 따라 남편이 일찍 퇴근을 했습니다. 싱크대에 그릇이 쌓여있는 걸 보고는 남편은 웬일인지 설겆이를 했습니다. 여기까지를 몰래 카메라로 촬영해서 제삼자들에게 보여주면 다들 "남편이 선의의 행동을 했다"라고 평가를 내립니다. 반전은 부인이 집에 들어오면서부터입니다. 부인은 반대로 화를 냅니다. 항의하려고 이렇게 한거냐. 나보고 좀 이렇게 하라는 뜻이냐 등등. 가트맨은 이렇게 풀이합니다. 신뢰가 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행동을 해도 악의의 행동으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팀장은 선의로 팀원들에게 책을 선물합니다. 그런데 신뢰가 이미 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팀원들이 느끼기에는 악의의 행동으로 보입니다. '나 보고 이런 거 모르니 공부하라는 얘기야? 자기는 쥐뿔도 모르면서...'

이 신뢰를 사회적 자본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소위 말하는 소셜 네트워크가 좋다고 하는 것도 사회적 자본의 일종입니다. 이런 사회적 자본이 좋은 사람들은 통상 사회적 기술이 뛰어납니다. 반대로 음의 기술을 가진 사람도 존재합니다 -- 커뮤니케이션할수록 신뢰가 깨어진다든지.

전문가가 해당 도메인 지식만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은 대표적인 미신입니다. 전문가는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기술이 뛰어납니다.

벨 연구소의 수십년에 걸친 "뛰어난 연구자"의 특성에 대한 연구의 결론은 사회적 자본, 특히 소셜 네트워크의 차이였습니다. 뛰어난 연구자는 같은 부탁을 해도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타인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최근의 소프트웨어 공학에서의 연구도 비슷합니다. 더 뛰어난 소프트웨어 개발자일수록 타인과 인터랙션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며, 초보 개발자들에 대한 조언으로 사회적인 면(예컨대 모르면 주변에 물어봐라, 남을 도와줘라 등)을 언급합니다.

특히, 이 마지막 부분이 재미있는데, 한 연구에서는 개발자들에게 초보 개발자에게 해 줄 조언을 적어보라고 했습니다. 평균 7년 경력의 개발자들이었는데(경력과 실력은 상관성이 없었음) 뛰어난 개발자들은 약 70%가 동료와의 협력을 언급하는 반면 실력이 그저 그런 사람들은 20%도 안되는 사람들만이 동료와의 협력을 언급했습니다. 이 정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면접에서 개발자의 실력을 가릴 때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죠.

만약 사회적 자본과 기술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개발자들은 학교에서 그걸 배우지 않을까요? 그것은 전문가에 대한 잘못된 모형 때문입니다. 혼자서 일하는 고독한 천재 같은 거죠. 기존 전문가 연구들은 통상 연구비를 낮추고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도 개인을 골방에 넣고 그의 독자적 행동과 선택을 연구했습니다. 거기에서 나온 전문가, 비전문가의 차이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전문가의 이미지가 형성되었고, 교육 과정도 거기에 기반해 짜여진 것이 아직도 많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사회적 작용을 하는 좀 더 현실적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연구를 했더니 기존 연구들이 뒤집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전문가는 이렇게 행동한다가 정반대로, 전문가일수록 그렇게 안한다는 결론이 난 것이 꽤 됩니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옵시다. 왜 교육을 받아도 못할까요? 그것은 사회적 자본과 기술이 없이 해당 도메인 지식만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자본과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높은 도메인 지식은 확산과 성공에 오히려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왜 그런지는 개인이 조직을 바꾸는 법 참고). 희망적인 소식은 이런 사회적 기술이 훈련에 의해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 FBI나 미특수 부대, 심리상담, 리더십 등의 영역에서 그 효과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이미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2000년부터 TDD를 사람들에게 교육하고 컨설팅해주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한에서는 TDD 도입에 실패하는 경우, 사람들이 TDD의 기술적 내용을 잘 몰라서보다도 TDD를 도입하는 데에 필요한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기술이 없어서인 경우, 그것이 더 병목인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이후로는 어떤 기술적 지식을 전달해도 그것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가르치고 경험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지난 6월에는 엔씨소프트에서 관리자 대상으로 애자일 소셜 스킬(social skill)이라는 교육을 했습니다. 그 때 다룬 구체적 기술은 피드백 주고 받기, 영향력 미치기, 가르치고 배우기, 위임하기 등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애자일 사용자 모임에서 있었던 일화로 글을 맺을까 합니다. 제가 잘 아는 후배가 자신이 속한 조직의 형상 관리 도구를 subversion에서 git으로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 후배는 대리 직급에서 그 일을 했고요. 사례 공유가 끝나자 청중에서 한 분이 손을 들고 물으시더군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하려고 git의 장점에 대한 발표도 하고 교육도 몇 번에 걸쳐 해줬는데 결국 사람들이 쓰게 하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수동적이고 보수적이에요." 저는 그 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역으로 물었습니다. "그 조직원들이 선생님을 좋아하나요?" 그 분과 제 후배의 상반된 답은 아마도 여러분이 짐작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4/11/10 13:55 | 트랙백 | 핑백(5)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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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있습니다. 사실 AC2 과정 자체가 이 CTA를 통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정에서는 전문가로부터 효과적으로 배우는 방법으로 CTA를 훈련받기도 합니다.전문가에 대한 미신 : 사회적 기술을 고려하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AC2에서는 사회적 기술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예컨대 주제 목록을 보시면, Motiva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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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에서 인지는 협력작업이라는 걸 역설합니다). 남의 영향을 받거나 남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사회적 자본이 없으면 의미있는 가치를 만들기 어렵습니다(왜 배워도 못하는가 2: 전문가에 대한 미신에서는 기술적인 내용에서조차도 사회적 자본이 성패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위의 내용을 공식으로 정리해 쓴다면 아마 다음과 같을 ... more

Linked at 퍼포먼스 공식 — 애자일 이야.. at 2016/11/04 15:29

... 실에서 인지는 협력작업이라는 걸 역설합니다). 남의 영향을 받거나 남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사회적 자본이 없으면 의미있는 가치를 만들기 어렵습니다(왜 배워도 못하는가 2: 전문가에 대한 미신에서는 기술적인 내용에서조차도 사회적 자본이 성패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위의 내용을 공식으로 정리해 쓴다면 아마 다음과 같을 ... more

Commented by 청하 at 2014/11/11 12:49
사람들이 왜 당신을 좋아하나요? 라는 질문에 박경림씨가 이렇게 답변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짜 친해질때까지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조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들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변화 시키기 이전에 매우 깊은 신뢰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 저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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