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왜 배워도 못하는가? : 뛰어난 선생에 대한 미신에 이은 2탄입니다.
지난 글에서는 안다고 해도 다 전달하지 못하며, 더 나아가 작은 부분(30%)만 전달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이번에는 전문가의 사회성이라는 측면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한 예로 테스트 주도 개발(TDD)이라는 프로그래밍 기법을 생각해 봅시다. TDD가 뭔지 모르시는 분들은 그냥,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더 효과적으로 하게 도와주는 프로그래밍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갑시다. 일반적인 TDD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기대하는 과정은 보통 이럴 것입니다.
여기에서 보통 문제가 되는 부분은 3, 4, 5, 6번입니다. 그리고, 1과 2를 잘 한다고 해서 3번 이후가 꼭 쉬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육에서는 보통 1번에만 집중을 합니다. 실무로 돌아가면 흔히 접하는 문제는 예컨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기술적 실천법이라고 해도 그걸 현실에서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자본과 기술이 필요합니다. 설사 나 혼자 하는 실천법이라고 해도 말이죠 -- 예컨대 상사가 내가 하는 걸 보고 반대하면 그를 설득해야 하며, 하다가 모르는 것이 생기면 주변에 물어봐야 하는 등. 응용통계학자 출신인 존 가트맨은 자신의 책 "신뢰의 과학"에서 다음 연구를 인용합니다. 남편과 부인은 서로 신뢰가 깨어져 있습니다. 맞벌이 부부인데, 그 날 따라 남편이 일찍 퇴근을 했습니다. 싱크대에 그릇이 쌓여있는 걸 보고는 남편은 웬일인지 설겆이를 했습니다. 여기까지를 몰래 카메라로 촬영해서 제삼자들에게 보여주면 다들 "남편이 선의의 행동을 했다"라고 평가를 내립니다. 반전은 부인이 집에 들어오면서부터입니다. 부인은 반대로 화를 냅니다. 항의하려고 이렇게 한거냐. 나보고 좀 이렇게 하라는 뜻이냐 등등. 가트맨은 이렇게 풀이합니다. 신뢰가 깨어져 있는 상태에서는 어떤 행동을 해도 악의의 행동으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팀장은 선의로 팀원들에게 책을 선물합니다. 그런데 신뢰가 이미 깨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팀원들이 느끼기에는 악의의 행동으로 보입니다. '나 보고 이런 거 모르니 공부하라는 얘기야? 자기는 쥐뿔도 모르면서...' 이 신뢰를 사회적 자본의 일종이라고 합니다. 소위 말하는 소셜 네트워크가 좋다고 하는 것도 사회적 자본의 일종입니다. 이런 사회적 자본이 좋은 사람들은 통상 사회적 기술이 뛰어납니다. 반대로 음의 기술을 가진 사람도 존재합니다 -- 커뮤니케이션할수록 신뢰가 깨어진다든지. 전문가가 해당 도메인 지식만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은 대표적인 미신입니다. 전문가는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기술이 뛰어납니다. 벨 연구소의 수십년에 걸친 "뛰어난 연구자"의 특성에 대한 연구의 결론은 사회적 자본, 특히 소셜 네트워크의 차이였습니다. 뛰어난 연구자는 같은 부탁을 해도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타인의 도움을 얻었습니다. 최근의 소프트웨어 공학에서의 연구도 비슷합니다. 더 뛰어난 소프트웨어 개발자일수록 타인과 인터랙션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며, 초보 개발자들에 대한 조언으로 사회적인 면(예컨대 모르면 주변에 물어봐라, 남을 도와줘라 등)을 언급합니다. 특히, 이 마지막 부분이 재미있는데, 한 연구에서는 개발자들에게 초보 개발자에게 해 줄 조언을 적어보라고 했습니다. 평균 7년 경력의 개발자들이었는데(경력과 실력은 상관성이 없었음) 뛰어난 개발자들은 약 70%가 동료와의 협력을 언급하는 반면 실력이 그저 그런 사람들은 20%도 안되는 사람들만이 동료와의 협력을 언급했습니다. 이 정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면접에서 개발자의 실력을 가릴 때에도 도움이 될 수 있겠죠. 만약 사회적 자본과 기술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개발자들은 학교에서 그걸 배우지 않을까요? 그것은 전문가에 대한 잘못된 모형 때문입니다. 혼자서 일하는 고독한 천재 같은 거죠. 기존 전문가 연구들은 통상 연구비를 낮추고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도 개인을 골방에 넣고 그의 독자적 행동과 선택을 연구했습니다. 거기에서 나온 전문가, 비전문가의 차이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전문가의 이미지가 형성되었고, 교육 과정도 거기에 기반해 짜여진 것이 아직도 많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사회적 작용을 하는 좀 더 현실적인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연구를 했더니 기존 연구들이 뒤집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전문가는 이렇게 행동한다가 정반대로, 전문가일수록 그렇게 안한다는 결론이 난 것이 꽤 됩니다. 다시 제목으로 돌아옵시다. 왜 교육을 받아도 못할까요? 그것은 사회적 자본과 기술이 없이 해당 도메인 지식만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자본과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 높은 도메인 지식은 확산과 성공에 오히려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왜 그런지는 개인이 조직을 바꾸는 법 참고). 희망적인 소식은 이런 사회적 기술이 훈련에 의해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 FBI나 미특수 부대, 심리상담, 리더십 등의 영역에서 그 효과에 대한 실증적 연구가 이미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2000년부터 TDD를 사람들에게 교육하고 컨설팅해주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한에서는 TDD 도입에 실패하는 경우, 사람들이 TDD의 기술적 내용을 잘 몰라서보다도 TDD를 도입하는 데에 필요한 사회적 자본과 사회적 기술이 없어서인 경우, 그것이 더 병목인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이후로는 어떤 기술적 지식을 전달해도 그것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가르치고 경험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지난 6월에는 엔씨소프트에서 관리자 대상으로 애자일 소셜 스킬(social skill)이라는 교육을 했습니다. 그 때 다룬 구체적 기술은 피드백 주고 받기, 영향력 미치기, 가르치고 배우기, 위임하기 등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애자일 사용자 모임에서 있었던 일화로 글을 맺을까 합니다. 제가 잘 아는 후배가 자신이 속한 조직의 형상 관리 도구를 subversion에서 git으로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 후배는 대리 직급에서 그 일을 했고요. 사례 공유가 끝나자 청중에서 한 분이 손을 들고 물으시더군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하려고 git의 장점에 대한 발표도 하고 교육도 몇 번에 걸쳐 해줬는데 결국 사람들이 쓰게 하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수동적이고 보수적이에요." 저는 그 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역으로 물었습니다. "그 조직원들이 선생님을 좋아하나요?" 그 분과 제 후배의 상반된 답은 아마도 여러분이 짐작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김창준 ![]() ![]() ![]() ![]() ![]() ![]()
|
메모장
이글루 파인더
최근 등록된 덧글
코딩을 막 배우고 있..
by 다다다 at 04/20 마음 고생 많이 하셨.. by Roeniss at 03/20 이글루스 문닫는다니.. by 유상민 at 03/14 http://ch.yes24.co.. by 최신주소 at 02/16 넵. 출처를 밝힌다면.. by 애자일컨설팅 at 01/11 안녕하세요! 개발 추.. by no-support at 01/09 좋은글 감사합니다... by 이범희 at 01/08 참고되었습니다. .. by tky7068 at 11/28 비교적 최근 논의를.. by 애자일컨설팅 at 06/17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by 냠 at 05/31 최근 등록된 트랙백
당신이 제자리 걸음인..
by 無地note 당신이 제자리 걸음인.. by 無地note 무엇을 프로그래밍 할.. by 용기와 희망의 블로그 어떤 회사의 개발자 .. by 뒷담화 기록보관소 채용퀴즈 풀기 by 기록하기 다음 디브온 2013 코.. by 浩然之氣 3차 2그룹 SLiPP .. by Confluence: SLiP.. 어떤 회사의 채용 퀴즈 by The note of Lege.. 회사에서 일을 하는게.. by 알팅스님의 개발 스토리 이전블로그
2021년 03월
2020년 05월 2020년 02월 2019년 09월 2018년 12월 2018년 04월 2018년 03월 2018년 02월 2017년 07월 2017년 05월 2017년 04월 2017년 03월 2016년 12월 2016년 11월 2016년 08월 2016년 07월 2015년 12월 2015년 11월 2015년 09월 2015년 08월 2015년 06월 2015년 05월 2015년 04월 2015년 03월 2015년 02월 2014년 12월 2014년 11월 2014년 09월 2014년 08월 2014년 03월 2014년 01월 2013년 12월 2013년 10월 2013년 08월 2013년 06월 2013년 05월 2013년 04월 2013년 02월 2012년 09월 2012년 08월 2012년 06월 2012년 05월 2012년 03월 2011년 12월 2011년 11월 2011년 10월 2011년 09월 2011년 04월 2011년 03월 2011년 02월 2011년 01월 2010년 12월 2010년 10월 2010년 09월 2010년 08월 2010년 07월 2010년 06월 2010년 05월 2010년 04월 2010년 03월 2010년 02월 2010년 01월 2009년 12월 2009년 11월 2009년 10월 2009년 09월 2009년 08월 2009년 07월 2009년 06월 2009년 05월 2009년 04월 2009년 03월 2009년 02월 2009년 01월 2008년 12월 2008년 11월 2008년 10월 2008년 09월 2008년 08월 2008년 07월 2008년 06월 2008년 05월 2008년 04월 2008년 03월 2008년 02월 2008년 01월 2007년 12월 2007년 11월 2007년 10월 2007년 09월 2007년 08월 2007년 07월 2007년 06월 2007년 05월 2007년 04월 2007년 03월 2007년 02월 2007년 01월 2006년 12월 2006년 11월 2006년 10월 2006년 09월 2006년 08월 2006년 07월 2006년 06월 2006년 05월 2006년 04월 2006년 03월 2006년 02월 라이프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