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4일 2012년 UX 캠프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프로토타이핑을 위한 즉흥연기(Improv for Prototyping)라는 세션을 맡아 진행했죠.
![]() (사진 출처는 정기원님 페이스북) UX 캠프 서울은 UX에 대한 바캠프입니다. 기본적으로 언컨퍼런스(컨퍼런스를 버려라 참고)를 표방하고 있는 행사입니다. UX 캠프 서울 홈페이지에서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컨퍼런스 주제는 행사 당일, 발표 참여자에게서 수집하여 공지됩니다. 청중 참여자들은 강의실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원하는 주제에 대해 발표를 듣고 의견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번 UX 캠프 서울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시간표에 시간과 공간은 비어있었지만 당일날 그 칸들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16개의 칸 중 3개가 비었음). 충분히 격려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적절한 보조적 구조(Nudge)가 없어서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참여자들끼리 의견을 나눌 기회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세션이 끝나면 다음 세션으로 이동하기 바쁘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만남을 가질 기회는 거의 없었습니다. 이번 캠프의 슬로건인 "크로스"가 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이었습니다. 반대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이 아쉬움을 채워줄 수 있는 멋진 실마리를 보여준 세션들에서 였습니다. 먼저 김병환님의 "Leaving Flatland : Pervasive Information Architecture"라는 세션입니다. ![]() (사진 출처는 Miriya님 블로그) 이 세션에서 병환님은 자신이 읽으신 책(Pervasive Information Architecture)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주셨습니다. 그런데, 보통 "발표"에서는 듣기 힘든 말씀을 몇 번 하셨습니다. 아주 순진한 표정을 지으시면서 "이 책이 꽤 어려워서 나도 잘 이해를 못했다", "잘 모르겠다" 등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이 부분만 해도 상당한 충격이죠). 발표도 비교적 일찍 끝났습니다. 이런 50분짜리 세션에서 시간이 남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인데,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것도 20분 가까이. 이제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질문 답변 시간입니다. 누가 질문을 합니다. 병환님은 대답을 해주시지만, "나도 잘은 모르겠다"는 식의 말씀을 끝에 붙입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자기 의견을 손들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참가자(청중이 아니라)끼리 질문하고 답변하고 토론하며 자기 프로젝트 경험담까지 나누기 시작합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야, 이게 진정 바캠프다. 그리고 이것은 연사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직접 용기있게 발화함에 의해 가능해졌다. 매우 인상적인 세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경험을 그날 한 번 더 하게 됩니다. 박진녕님의 "시각적으로 감성 평가하기"라는 세션이었습니다. 연구원으로서 자신의 연구경험을 공유하는 세션이었죠. ![]() (사진 출처는 Miriya님 블로그) 이 분 역시 발표는 일찍 끝나고 질문 답변 시간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도리어 청중을 향해 질문을 날립니다. 이 부분이 걸작이었습니다.
발표자가 마지막에 청중들에게, 당신들은 감성 평가를 위해 어떻게 하고 있냐, 또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은가 하는 질문을 한 겁니다. 자기 발표를 디펜스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요청한 겁니다. 저는 이 마지막 장표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발표 자리에서 오히려 발표자가 청중들로부터 정보를 얻어가는 방법이고, 또 청중들 스스로 이 발표시간의 가치를 높이게 돕는 방법이고, 청중의 질문을 청중이 풀어주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자기 경험담을 공유하고, 발표에서 개선점을 제안하고, 발표자의 향후 연구에 도움될만한 정보들을 주고 있었고, 그 과정 중에서 참가자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저는 이런 이유로 이 날 바캠프에서 이 두 분의 세션이 가장 인상에 남았습니다. 제가 가봤던 세션들 중에서는 바캠프의 느낌(발표자와 참가자 큰 구분 없이 서로 수평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 가장 많이 났던 시간들이었고요. 이제 제목이야기를 해볼까요. 톰 소여는 벌로 울타리를 흰색으로 칠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귀찮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친구들에게 이 작업이 왜 중요하고 재미있는지를 잘 전달합니다. 그러자 친구들이 울타리 칠하기를 위해 각자 자기의 보물을 하나씩 톰에게 주고 줄 서가며 칠하게 되는 진풍경이 연출됩니다. 저는 김병환님과 박진녕님이 보여주신 신공을 "톰 소여의 울타리 칠하기"에 비유해보고 싶습니다. 두 분은 방법은 달랐지만(병환님은 "나도 잘 모른다"는 말로 발표자의 위치를 떨어뜨려 참가자와 같은 위치에 놓음, 진녕님은 "경험담 들려주시고 조언도 주세요"라는 말로 청중들의 위치를 높여 발표자와 같은 위치에 놓음) 결과적으로 발표자와 청중의 관계에서 오는 비대칭적 관계를 깨뜨리고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었고, 이 덕분에 발표자가 할 일을 청중들이 나서서 하도록 만들었죠. 사실 저도 걸려들어서(?) 이 두 발표에서 손 들고 이야기(소감, 다른 청중의 질문에 대한 답, 제가 이해한 이 발표의 핵심과 중요성, 저의 경험담 등) 몇 번 했습니다 -- 다른 청중분들이 의견을 내는 데에 일조했다고 나름 생각하고 있습니다. ^^;; 모든 발표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발표하고 질답하는 전통적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청중의 참여를 끌어내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참고로, 이 방법은 뛰어난 팀장이 팀원들의 적극성을 끌어낼 때에도 많이 사용합니다 -- 다 아는 팀장 밑에서는 팀원의 적극성이 필요 없거든요. 팀원들이 적극적이길 바란다면 팀장은 통상 어깨에 힘을 빼는 것이 유리합니다. 저는 이걸 Vulnerability라는 개념과 연결 짓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UX 캠프 서울이 좀 더 바캠프적으로 참여자간 소통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이번 2012 UX 캠프 서울을 가능케 해주신 스태프와 발표자, 그리고 참석자 모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p.s. 한국 애자일 컨퍼런스 2012가 9월 1일에 열립니다. 이번에는 발표자를 공개 모집하고 있습니다. 어떠신가요, 이번 기회에 발표하면서 청중으로부터 경험담과 조언도 듣는 건? "내가 겪은 어려움들"식의 발표도 저 개인적으로는 적극 환영하고 싶네요(잘 모르겠네요 신공과 여러분 경험은 신공을 합한 톰 소여의 울타리 칠하기 신공을 써서). "내가 아는 해결책들"보다 청중들로부터 더 많은 의견과 경험담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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