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동안 전문가가 안되는 비결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네만 교수는 발견법과 편향(Heuristics and Bias, 이하 HB) 학파의 수장입니다. HB 학파는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넓게 보면 인간)이 사실은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밝혀내는 데에 큰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학파랑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이는 학파는 자연주의 의사결정론(Naturalistic Decision Making, 이하 NDM) 학파입니다(전문성 연구도 이 편에 있습니다). NDM의 수장은 게리 클라인(Gary Klein)입니다. NDM 학파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 있는지를 알리는 데에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NDM의 또 다른 선구자 중 하나인 로버트 호프만 박사는 저와의 대화 중에 HB를 어두운 세력(dark side)이라고 하고 NDM을 밝은 세력(bright side)이라고 표현하더군요.

사실 이 두 학파의 초점은 전문가들의 직관적 판단에 모아집니다. HB는 그건 믿을 것이 못된다는 말을 하고, NDM은 믿을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직관에 대해 NDM의 입장을 (어느 정도) 대변하는 대중서가 말콤 글래드웰의 "블링크"입니다. 또 이 책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Think!"라는 책도 있습니다.

어느 편의 말을 들어야 할까요? 사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것이 참 많습니다. 이때 흑백논리가 들어맞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어떤 상황 하에서 이 이야기가 잘 들어맞고, 또 어떤 상황 하에서 저 이야기가 들어맞는지 봐야 합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죠. (결국 프레임입니다!)

NDM과 HB의 두 수장이 최근 논문 하나를 공동저술, 출판했습니다. 직관적 전문성의 조건(Conditions for intuitive expertise: a failure to disagree)이라는 제목입니다. 두 사람이 같이 논문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뉴스감입니다. 적어도 두 학파 중 하나에 몸을 담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놀라움이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대표가 악수하는 사진 같은 상징성이 있는 겁니다.

두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직관이 형성되려면 조건이 있다고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두가지를 듭니다. 유효성(Validity)과 피드백(Feedback)입니다.

유효성이란 직관이 적용되는 영역에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인과관계가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불확실성과는 다른데 예컨대 포커 게임에서는 전문성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이게 떨어지는 분야는 장기적 정치 판도 예측과 주가가 대표적입니다. 실제로 두 가지 모두 실험을 했습니다. 역사나 정치학의 전문가들이나 일반인이나 장기적인 정치 판도를 예측하는 데에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주가(개별 주식에 대한)도 펀드 매니저나 원숭이나 큰 차이가 없거나 혹은 전문가가 더 못했습니다.

피드백은 자신이 내린 직관적 판단에 대해 빨리 피드백이 주어지고 이를 통해 학습할 기회가 주어지는 환경이냐 하는 걸 말합니다. 이게 부족한 직업으로는 공항의 보안검사대 조사원을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오늘 얼마나 실수를 했는지 아는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오늘 가방에서 칼이나 액체물질을 얼마 찾았는지는 알아도 내가 놓친 건수는 모릅니다. 한번 놓치면 영영 빠빠이거든요.

수십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전문가가 안되는 비결이 있다면 유효성과 피드백이 부족한 환경(예컨대 복잡한 상황에서 뒤죽박죽으로 일하거나 내가 오늘 실수한 것을 몇 달 뒤에 알거나 혹은 영영 모르거나)에서 일하는 겁니다. 그것이 요체이지요.

저자들은 이렇게 전문성이 발전될 수 있는 직업과 그렇지 못한 직업을 구분합니다(Shanteau의 연구를 언급). 그리고 그 중간에 놓이는 직업들도 있습니다. 몇 몇 작업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발전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 직업들이죠. 의사가 한가지 예입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어떨까요? 아마 중간영역에 위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반적으로 유효성도 낮고 피드백도 낮은 편이겠지만, 개발 방법을 바꾸면 이 두가지를 어느 정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전문성을 더 빨리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더 말씀드리기로 하죠.

--김창준

p.s.

AC2 신청이 오늘 자정에 마감됩니다. 예상 외로 회사에 다니시면서도 직접 자비를 들이고 휴가를 내어서 참가하시는 분들이 꽤 되시네요. 배움에 대한 갈망이 크신 것 같습니다. AC2에서는 코칭을 통해 유효성과 피드백을 높이는 방법을 연습하게 됩니다.
by 애자일컨설팅 | 2009/11/10 13:02 | 트랙백(7) | 핑백(8)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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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전문가가 안되는 비결이 있다면 유효성과 피드백이 부족한 환경(예컨대 복잡한 상황에서 뒤죽박죽으로 일하거나 내가 오늘 실수한 것을 몇 달 뒤에 알거나 혹은 영영 모르거나)에서 일하는 겁니다. 그것이 요체이지요. - 애자일 이야기...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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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정찬명의 생각
현재의 환경을 예측 가능한 환경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피드백을 받는 것은 본인이나 조직 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기대할 수 있으므로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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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링크 -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무열 옮김, 황상민 감수/21세기북스(북이십일) Think 싱크! - 마이클 르고 지음, 임옥희 옮김/리더스북 우리의 사고 과정은 크게 2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동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숙고 체계입니다. 이것을 통찰 또는 직관과 비판적 사고 또는 논리라고 이해해도 상관 없습니다. 이 두가지 과정은 발견법과 편향(Heuristics and Bias) 학파와 자연주의 의사결정론(Natural......more

Tracked from 홍환민 블로그 at 2010/03/21 13:15

제목 : 실력이 향상되는 원리 (혹은 향상되지 않는 원리)
항상 개발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개발자의 실력을 경력 년수로 따질 수가 있느냐? 근데 필드에서는 그런 식으로 많이 따지지요.개발자의 실력에 대한 마땅한 측정 방법이 없어서 일수도 있고, 개발을 오래했으면 잘하겠지~ 라는 업계에 팽배해 있는 미신 때문일수도 있고요. (뭐 실력 측정 방법 중에 가장 좋으면서도 널리 쓰이는건 포트폴리오 겠지요. 직접 만든 프로그램을 보는 것.)뭐 경력과 그로인한 경험을 무시하자는건 아닙니다.경험은 ......more

Tracked from toracle's me.. at 2010/06/16 09:48

제목 : toracle의 생각
그렇다고 실패나 역경이 저절로 자산으로 변화하지는 않는다. http://bit.ly/3RCQsu...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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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부분부터 느껴나가고, 공부해나갈 것이다. 내가 아직 잘 모르긴 하지만 남편의 '수십년 동안 전문가가 안되는 비결'에서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http://agile.egloos.com/5166038 ... more

Linked at 일하는 환경 | Like Olaf at 2014/05/06 00:10

... 읽어 볼만 합니다. 글 중간 중간의 링크를 따라가다 보면 도움되는 글들도 있고요. 시간 나실 때 한번 꼭 읽어보세요. 수십년 동안 전문가가 안되는 비결 [보기] “십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전문가가 안되는 비결이 있다면 유효성과 피드백이 부족한 환경(예컨대 복잡한 상황에서 뒤죽박죽으로 일하거나 내가 ... more

Linked at 애자일 이야기 : 아무리 노력.. at 2014/09/01 12:23

... 군요. 소위 1만 시간 법칙에 대해 세간에 널리 퍼진 믿음(여기에 대해 오해가 많은데 관련해서는 "1만 시간 법칙에 대한 오해"와 "달인이 되는 비결", "수십년 동안 전문가가 안되는 비결"을 참고)을 뒤흔드는 연구결과라며 아래와 같은 내용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논문의 결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 재능을 따라잡 ... more

Linked at 수십년 동안 전문가가 안되는 .. at 2014/10/14 09:36

... 를 언급). 그리고 그 중간에 놓이는 직업들도 있습니다. 몇 몇 작업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발전되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 직업들이죠. 의사가 한가지 예입니다. 원문: 애자일 이야기 김창준(http://agile.egloos.com)애자일컨설팅 대표로 있으며 주로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의 생산성과 인간성 모두를 증진하기 위해 컨설팅, 코칭, ... more

Linked at 과학이 바라본 노력과 재능의 .. at 2014/10/30 15:45

... 믿음(여기에 대해 오해가 많은데 관련해서는 &#8220;1만 시간 법칙에 대한 오해&#8220;와 &#8220;달인이 되는 비결&#8220;, &#8220;수십년 동안 전문가가 안되는 비결&#8220;을 참고)을 뒤흔드는 연구결과라며 아래와 같은 내용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논문의 결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 재능을 따라잡기 힘들다 ... more

Linked at 수십년 동안 전문가가 안되는 .. at 2015/02/01 06:51

... 메뉴 컨텐츠로 건너뛰기 홈자기 소개 검색 검색: 수십년 동안 전문가가 안되는 비결 2015년 2월 1일 / hongseoklee 출처: http://agile.egloos.com/5166038 NDM과 HB의 두 수장이 최근 논문 하나를 공동저술, 출판했습니다. 직관적 전문성의 조건(Conditions for intuitive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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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어 볼만 합니다. 글 중간 중간의 링크를 따라가다 보면 도움되는 글들도 있고요. 시간 나실 때 한번 꼭 읽어보세요. 수십년 동안 전문가가 안되는 비결 [보기] “십년 동안 한 가지 일을 하면서 전문가가 안되는 비결이 있다면 유효성과 피드백이 부족한 환경(예컨대 복잡한 상황에서 뒤죽박죽으로 일하거나 내가 ... more

Commented by 이용상 at 2009/11/10 19:19
그렇군요.. 확실히 유효성(Validity)과 피드백(Feedback)이 없다면
몇년을 일해도 결국 능률은 크게 변하지 않겠네요

예전에 의도적수련이 있어야 된다는 글도 본거 같은데
의도적으로 생각햇다는것은 유효성을 계산했다는것이고
피드백도 받았다는 것이니
결국 비슷한 말일까요?
Commented by 이용상 at 2009/11/11 09:38
어제밤 생각해보니까 의도적수련하고는 조금 다른 것이네요

내가 의도적으로 발전하고 싶어도
내 기술의 정확성이라던가 남들에게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면
나의 기술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할테고
의도적 수련도 힘들겠죠

반대로 내 기술의 수준을 알고 남들에게 이런저런 피드백을 받아도
내가 발전해야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말짱 도로묵이네요
Commented by hezzi at 2009/11/11 09:56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소프트웨어 개발이 유효성도 낮고 피드백도 낮다는 의견을 내셨는데..
오히려 개발과정에서 디버깅을 하면서 피드백도 되고..
결과 예측도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하니..
유효성도 높고 피드백도 높은게 아닐까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Commented by Richpapa at 2009/11/11 15:27
@hezzi 그 부분은 국부적이닌 부분이 아닐까요? 디버깅을 한다고 해서 개발하는 데 있어서 본인의 발전에 대한 유효성을 판단할 수 있나요? 디버깅을 해서 에러나 버그를 잡았다고 해서 피드백을 받았다고 느껴지나요? hezzi님의 말씀은 소인국의 뉘앙스가 강한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영록 at 2009/11/13 12:31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죠. 거시적인 피드백 못지 않게 미시적인 피드백도 중요합니다. 코딩 실력이 느는 것도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고 코딩 실력이 늘려면 내가 짠 코드가 내가 의도한 대로 동작하느냐 아니냐의 피드백을 받아야 하니까요. 코딩은 잘하는데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낼 줄 모르는 개발자도 문제지만, 코딩 실력이 떨어져서 고객이 원하는 걸 원하는 시간에 만들어주지 못하는 개발자는 더 큰 문제겠죠.
Commented by 청하 sozu at 2009/11/16 10:36
최근 회사내 발표회에서 어떤 분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회사 코드는 10년전이나 5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발전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매우 공감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저는 개발자의 실력이 정체되는 것은 오직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글을 보고 (또한 현재 회사에서 진행중인 조직개편의 모티브를 보고) 개인만의 책임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_+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현재 저희 회사의 조직개편은 개발자들에게는 팀간 이동이 쪼금 더 자유로울수 있다는 당근 하나만 던져준체 개발자를 더욱 고립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많이 아쉽지만 제가 무엇을 할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ㅠㅠ
Commented by 낭망백수 at 2009/12/06 01:46
소프트웨어 개발 작업 자체의 유효성 측면은,
산출물에 대해 유효성 계측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간접적으로 판단 가능하다고 본다면,
실물 생산분야보다는 못해도 평균 이상은 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저도 궁금한 것이,
개발 작업 자체의 유효성에 대한 지수가 존재하기는 하나요?
개발이란게 사실 다 간접적인 것 아닌가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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