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와 수신호
플래닝 포커 카드라는 게 있습니다. 애자일(XP, 스크럼, 기타 등등)에서는 어떤 일을 계획할 때 당연히 이 일이 얼마나 걸릴지 추정을 하게 되는데 그 때 한 두 사람이 주도적으로 추정을 모조리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라고 합니다. 이 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사진 출처는 인사이트 블로그

다같이 추정을 할 때 주의점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내가 보기에 이 일은 8만큼의 일이야"라고 먼저 말을 해버리면 여기에 나머지 사람들이 따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앵커링 효과, 집단 사고, 그룹 씽크 등이 작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대중의 지혜(Wisdom of Crowds)가 작동하는 전제 중 하나인 "독립적이고 다양한 판단"을 진작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합니다. 플래닝 포커가 그런 예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일의 크기 카드를 하나씩 뽑아 탁자 위에 놓은 다음 일제히 뒤집습니다(나중에 익숙해지면 하나, 둘, 셋에 카드 하나를 내용이 위를 향하게 해서 내밀게 됩니다). 이제 여기에서 컨센서스 기반 결정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 작업에서 단순히 추정의 가치만 얻는 것이 아니고 팀원들간의 의사소통, 지식 공유, 리스크 발견 등 다양한 가치를 얻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차후에 더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고요.

2002년이었나 그랬을 겁니다. 주변분들과 이 플래닝 포커를 수공예 제작해 쓴 적이 있습니다. 오브젝트 멘토에서 공개한 컬러 pdf 파일을 가져다가 강규영씨가 고품질의 컬러 레이저 인쇄를 하고(고맙습니다, 이름을 모르는 사장님) 특수 풀을 써서 고급 종이에 붙인 다음 꼼꼼히 잘라서 카드를 만들었죠. 당시 만든 카드는 제 서랍 어디에 고이고이 기념품으로 한 벌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사이트에서 이번에 플래닝 포커 카드를 제작했나 봅니다. 제게도 두 벌을 보내주셨네요. (고맙습니다) 이쁩니다. (위 사진) 예전에 직접 만들어 쓴 카드는 좀 더 포커 카드(트럼프 카드) 느낌이 났는데 이번 것은 숫자가 큼지막하게 나온 게 좋네요. 그 외에도 다양한 디자인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마이크 콘(Mike Cohn)은 플래닝 포커 카드 디자인 대회도 하고 있습니다.

인사이트에서 제작한 이 카드의 아쉬운 점은 "한정 수량"이라는 것이죠. 그런분들을 위해 대안을 소개할까 합니다.

저는 교육을 할 때 제가 고안한 수신호를 가르쳐드립니다. 마치 새벽 어시장에서 손가락을 사용해 금액을 표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하나 둘 셋 하고 나서 각자 모양을 만들어 손을 내미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0.5, 1, 2, 3, 5, 8, 13, 20, 무한대 이렇게 9가지를 표현합니다(그것 외에 더 여러가지를 표현할 필요가 없더군요 -- 가짓수가 많아지면 뭔가 병증이 있다는 증후일 수 있습니다).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제 경험상으로는 다음 방법이 제일 직관적인 것 같더군요. 원하시면 다른 수신호 체계를 만드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정지된 손모양으로 적어도 0부터 1000까지 숫자를 표현할 수도 있다는 사실 아세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손가락 하나를 비트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그림 김창준

제가 직접 윈도우즈 그림판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모델은 김창준씨의 왼손). 사진으로 찍으면 쉬울텐데 사진기가 고장나기도 했고 이번 기회에 직접 그려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서 부담없이 쓱쓱 그려봤습니다.

무한대에 대해서는 부가 설명을 할 필요가 있겠네요. 무한대는 모르겠다 혹은 20보다 크다를 의미합니다. 애자일식 추정에서는 결국 두가지를 동일하게 봐도 됩니다. 왜냐하면 거의 대부분 해결책은 둘 다 일을 작게 쪼개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주먹이 자꾸 나오면 위험신호로 봐야합니다. 일종의 증후인데, 추정을 잠시 유보하고 다른 접근을 해보는 것을 권합니다. (또다른 주의사항. 숫자 1을 표현할 때에는 손가락 선택에 유의하세요)

수신호를 쓰면 카드에 비해 장점이 몇가지 있습니다.
  • 두뇌 운동이 되고 분위기가 부드러워진다 (손을 움직이는 것이 두뇌에 많은 자극을 준다고 하죠)
  • 눈감고도 할 수 있다 (단, 계속 눈을 감고 하려면 내고 나서는 각자 뭘 냈는지 말해야 함)
  • 탁자가 없는 곳에서, 혹은 일어 선 채로(기립 회의처럼) 할 수 있다 (카드도 탁자 없는 곳에서 가능하긴 하나 좀 어색할 수 있겠죠)
  • 별다른 도구가 없어도 된다 (모유와 젖병 비유)
  • 손가락으로 대략적인 양이 표현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해도 한눈에 판도가 들어오고 이상값(outlier)이 쉽게 인식된다

이에 비해 카드는 그나마 좀 더 어른스러워(혹은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장점이 있고, 손으로 하는 놀이에 쥐약인 사람(그러나 카드 놀이는 잘해야 함)도 가능하다는 점, 어떤 추정치들이 가능한지 기억을 잘 못해도 된다는 등의 장점이 있습니다. 아,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이쁘고 뽀대 난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죠.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09/05/05 01:08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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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wafe's me2DAY at 2009/05/08 11:57

제목 : wafe의 생각
애자일 이야기 : 카드와 수신호. 인사이트에서 제작한 플래닝 포커 카드 받았다. 오… 품질 좋네 +_+...more

Commented by Gloridea at 2009/05/05 02:23
확실히 동시에 카드를 내는 것과 말로 하는 것은 차이가 크더군요. 그대로 분위기를 방치하면 몇몇 사람만 계속 이야기하는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이 따라가는 경향" 말고도, 그것보다 적게 부르면 폐를 끼치는 게 아닐까, 혹은 그것보다 많이 부르면 내가 게을러(혹은 무능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압박감도 작용하는 듯하구요. 그런 느낌이 들면 분위기를 먼저 환기시키는 게 필요한 듯합니다.

그나저나 카드 멋지네요 : ) 안그래도 만들까 하던 차인데...
Commented by 애자일컨설팅 at 2009/05/05 21:55
같이 모여서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 말씀하신 부작용이 있습니다. 누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 합니다. 거기에 대해 누구도 토를 달지는 않습니다 -- 브레인스토밍의 규칙을 잘 따르는 것이죠. 하지만 누군가가 눈썹을 살짝 찌푸립니다. 아이디어 제안을 한 사람은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제안을 잘 하지 않게 됩니다. 무의식적으로 접수한 것이죠.
Commented by all2one at 2009/05/05 06:19
수신호라... 좋은 아이디어군요. ^^
Commented by SeeReal at 2009/05/05 10:31
이쁘고 뽀대!

아, 저 카드 정말 탐나는군요.
Commented by 애자일컨설팅 at 2009/05/05 21:55
여러가지로 활용할 수 있겠죠? 다음에 만나면 한 벌 드릴게요. 손재주가 좋으시니 직접 만들어보셔도 될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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