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에 감동받다
저는 KT 메가패스를 쓰고 있습니다. 오늘 왠지 무선 접속이 안되더군요. 그래서 랜선으로 직접 연결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메가패스 로그인 페이지가 뜹니다. 우선 이걸 통과해야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눈치입니다.

아 그런데 이를 어쩌나. 아이디랑 암호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아이디, 암호 조합을 넣어봤는데 모두 실패입니다. 그래서 아이디, 암호 찾기라는 버튼을 눌러봤습니다. 아이디는 주민번호로 쉽게 찾아지네요. 그런데 암호를 찾으려면 핸드폰으로 SMS를 받아야 합니다. 몇 가지 정보를 입력하고 SMS로 받기를 누르면...... 이런. 트래픽 장애인가 뭐인가가 있으니 나중에 다시 시도해 보라고 합니다. 다시 시도하기 누르면 또 정보를 새로 입력해야 합니다. 몇 번을 반복하다가 100을 눌렀습니다. KT 고장 신고 전화번호입니다.

세 명이 대기중이라고 하고 15초를 기다리라고 하네요. 곧 연결이 되었습니다. 어떤 여성분이 받으시더군요.

(아래에 나오는 대화는 정확한 표현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제가 대략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어떤 일이신가요, 고객님?"

"네, 메가패스를 쓰는데 인터넷 접속이 갑자기 안되는데 메가패스 로그인 창만 뜨네요"


여기까지는 별 특이점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음 대목에서 저는 글자 그대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인터넷이 안되어서 정말 불편하셨겠어요." (진심 어린 말투로)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를 잊을 지경이었습니다. 온 몸에 긴장이 풀리고 멍하고 아득해지더군요. 그리고 저는 오로지 가능한 하나의 대답을 합니다.

"네. 그렇죠."


완전히 무릎을 꿇게 됩니다. 굽히고 들어가는 거죠. 제 마음은 벌써 무장해제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에이, 설마 하면서 말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면 SMS로 인증 받기를 하실 수 있는데 어쩌구 저쩌구"

"아, 그걸 아까부터 해보고 있는데 무슨 오류가 나면서 계속 안되네요."


여기에서 다시 한번 필살기가 나옵니다.

"연결이 안되어서 정말 속상하셨겠어요."


무한 긍정 답변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네, 그렇죠."


아시는 분들은 다 알고 있는 비폭력 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입니다. 아, 제가 고객 불편 전화를 해서 NVC 어택을 당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을 못했습니다. 제가 평생 해본 고객 상담 전화 중에서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감동 받았습니다.

상대가 나의 감정 상태에 공감을 해주면 나는 긴장한 마음이 확 풀어져 버립니다. 일단 처음부터 "네 그렇죠"라는 긍정 대답을 하기 때문에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로를 타게 되는 거죠. 미칠 듯 날뛰는 사자를 다스리는 것은 그 감정에 공감을 해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확인 받는 순간 긴장이 풀어지고 나 자신을 객관화해 볼 수 있게 됩니다.

7월 10일 12시 21분부터 5분 54초간 상담을 해주셨던 여성분, 누구인지 모르지만(이름을 기억해 두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 너무 당황을 해서 경황이 없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KT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교훈:
  1. 감정적으로 고조된 사람에게 네가 옳니 그르니를 말하기 전에 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해 주자
  2. 훌륭한 상담원 하나가 기업 이미지를 바꿀 수도 있다
  3. 모든 상담원들에게 NVC를 교육하자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08/07/10 23:30 | 트랙백(4) | 덧글(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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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keizie's me2.. at 2008/07/11 05:57

제목 : kz의 생각
비폭력 상담을 몇 번 접했는데 별로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내가 원했던 건 문제의 해결이지 고작 상담원의 공감이 아니었으니까.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거지 위안거리가 생긴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more

Tracked from sheep's me2DAY at 2008/07/30 04:03

제목 : Tolchi의 느낌
NVC이란 것을 첨 알았다... 왜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런 걸 시행하는데가 없을까?...more

Tracked from chcha's me2DAY at 2008/09/04 10:09

제목 : 짜장의 생각
애자일 이야기 : KT에 감동받다NVC라는 거, 내가 꼭 배워야 하는 것 같다. 난 너무 직설적이야....more

Tracked from 不同而和 at 2008/09/19 04:08

제목 : 한마디 말이 모자라서 다가설 수 없는 사람아;비폭력..
...'무지'(無知)를 '관심'(關心)으로 돌리면 '감동'(感動)이 생긴다...앞에서 '동감-사실-평가-요구-관심'이라는 절차와 '관심-사실-동감-차이-일치'라는 과정을 언급했듯이, 비폭력 대화에서는 ......more

Commented by 시리니 at 2008/07/10 23:39
아... 이건 다른 의미로도 감동적(?)인데요. 쉽게 해결될 것 같은 일인데도
고객센터까지 전화해서 해결해야 하고 그 것도 기다려야 하다니...
Commented by 애자일컨설팅 at 2008/07/11 00:57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인터넷 접속이 안되어서 그 상담원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좋았습니다. :)
Commented by Eminency at 2008/07/10 23:41
개인정보 유출 비슷한 일이 있어서(L* *워콤) 항의차 전화했었는데 비슷한 류의 말을 직원에게 들으니 더 열이 받더군요..-_-
Commented by 애자일컨설팅 at 2008/07/11 00:59
가끔 NVC로 대화를 했을 때 상대가 더 화를 내게 되는 경우도 있더군요. 낯설고(듣는 사람 입장) 서툴러서(말하는 사람 입장)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몽둥발이 at 2008/07/11 00:34
대화상대가 흥분해 있을때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듣고 공감해주는 것인것 같습니다. 창준님 경험에 너무나 공감합니다. ^^
Commented by rururara at 2008/07/11 00:46
어짜피 고객상담메뉴얼대로 했을 것인데, 훌륭한 상담원이라기보다는, 많은 어택(?)에 단련된 모습 같아요-_-
Commented by daybreaker at 2008/07/11 01:40
뭐랄까, 실제로 저런 상황이었다면 네네 하고 전화 딱 끊고 나서 '속았다'라는 생각에 거꾸로 더 열받을 거 같습니다 -_-;; ㅋㅋ
Commented by benelog at 2008/07/11 08:06
저는 네이버의 고객응답 메일 형식을 보면서 그곳 담당자 중 누군가도 '비폭력대화'를 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 http://blog.naver.com/phrack/80050910885 에도 나와 있는데, "사진 업로드 후 한글 입력이 되지 않아 문의 주셨는지요? , 한글이 입력되지 않아 많이 답답하시겠습니다" 라는 부분이 왠지 친숙하군요 ^^;)

아내한테 비폭력대화를 설명하니 그게 '나 대화법' 아니냐고도 하던데, 찾아보니 그것도 비슷한 요소가 있더군요. 아뭏든 위와 같은 의사소통법을 생각해낸 경로나 명칭이 어떻든지, 조금이라도 더 고민한 흔적이 보이는 듯 해서 좋게 느껴집니다.
Commented by 송인혁 at 2008/07/11 09:04
NVC 어택은 강력하기는 하지만, NVC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면 테크닉을 쓴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저도 와이프랑 이런 식의 접근을 하면, 저의 모가지를 콱 움켜 잡고 밀어내면서 '고마해라잉' 어택을 받는다는... ㅎㅎ
Commented by webkorea at 2008/07/11 09:29
아직 사놓고 보지 않고 있는 비폭력 대화 NVC 패턴을 빨리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Commented by dobiho at 2008/07/11 09:35
같은 내용의 말이라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들리던데, '비폭력대화' 라는 것을 이미 알고 이런 경험을 했다면 콜센타의 응대자가 참 잘 하는 사람이었나 봅니다.
Commented by 아말감 at 2008/07/11 13:01
부모역할훈련(PET)이 비폭력대화와 닮은 점이 많더군요. 거기에는 구체적인 용어로 나-전달법 너-전달법 같은게 나오는데요, 책을 읽어보면 예제가 많아 직접 적용하기 편한 점이 있겠더군요. 하지만 비폭력대화가 좀더 원리가 서고 체계가 있고 좀더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역할훈련의 몇가지 처방을 그냥 앵무새처럼 따라하면 상대가 화가 날 수 있죠. 진심이 담긴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담원들도 마찬가지로 진심을 담아 응대하는 것과 매뉴얼대로 그냥 말하는 것은 천지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왠지 저도 요즘 상담원들이 사무적인 응대보다는 고객의 감정을 먼저 챙겨주는 곳이 많아지는 걸 느끼던 중입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비폭력대화 같은 의식을 깔고 하는 것이었을까 생각하니 재미있네요.
Commented by sloth at 2008/07/11 17:02
KT에서 교육을 하나봐요. 저도 비슷한 상담을받았었거든요

음.. 근데 저는 다른면에서 놀랍네요..
저는 그냥 '간지럽게 왜 이래' 하구 넘어갔었거든요,,

감동을 받을일엔 감동을 받을수있는 사람이되면.. 세상살기도 더 즐거워지겠죠?



저는 글쓴분의 받아들이는 태도가 (저랑 비교가되서) 그게 참 부럽네요
Commented by krieiter at 2008/07/12 03:11
저도 바로 어제 비슷한 상담을 받았는데, 일처리가 좀 복잡해지고 문제가 좀 더 있어서 세 명 정도의 상담원과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의 두 명이 저런 식으로 얘기하는데, 바로 윗 댓글 sloth님 말처럼 저도 얘들이 간지럽게 왜 이래.. 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더군요. 한편으론 서비스센터 전화걸어서 화내는 사람이 오죽 많으면 이럴까 싶기도 합니다만.
Commented by [1002] at 2008/07/12 09:46
NVC 를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NVC 어택'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합니다; 상담원들이 듣고 공감을 해주는 것도 좋지만,근본적으로 말도 안되는 시스템을 NVC 로 포장하는 모습은 아닐까 하면서.;
한편으로는 수많은 말 안통하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상담원들의 매일 받는 스트레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NVC 쉴드가 필요할런지도요; 공격과 수비 둘 다 되는 기법이군요. ^^;

Commented by 김우승 at 2008/07/12 13:29
비폭력대화는 가치중립적?
Commented by glue at 2008/07/14 04:13
하나로통신도 저런식이던데요. 언제나 고객의 클레임과 각종 소송을 안고 사는 회사들이라서 그런지, 정말 훈련이 잘 되어 있더군요.
Commented by 혜진이 at 2008/07/14 08:10
일단 공감해주면 좋죠.. 제가 프로그램짜다가 모르겠어서 남친한테 전화했더니.. 힘들겠다고 말하긴 커녕 화를 내더라구요.. 내가 그걸 어떻게 해결하냐고.. 그러더니 진짜 풀어야 되는 문제인줄 알고 ㅡㅡ 해결책을 갖고 와서 깜짝 놀랬는데.. 남자들은 공감하는 말하기를 할 필요가 있음..
Commented by 하이에나 at 2008/07/14 10:27
박노자 라는 유럽에서 한국으로 귀화 온 사람이 쓴책에서는 그 사람이 대기업이 이런 친절을 무기로 써서 중소기업들을 배척한다고 불평하더군요.
그리고 그런 친절을 잠시라도 거두면 위에서 관리하는 사람이 갈구니깐 대기업 전화상담원이나 백화점 직원들은 감정적인 노동을 강요당하고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고 하더군요.(딱히 갈굼말고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어서 갈굼이라는 상스러운 말을 썼습니다.)
그 글을 읽고 맞는 듯 싶으면서도 어딘가 맞지 않다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여기서 이 글을 읽으니깐 대기업 전화 상담원들의 친절은 고객들의 갈굼도 한 몫을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박노자가 고객들의 갈굼에 대해 알고 있었으면 대기업 전화 상담원들을 자본주의의 희생양으로 보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박노자라는 분은 한 가지를 더 놓치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중소기업의 사장분은 인터넷에서 자기회사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경쟁자를 망하게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고 글을 올렸습니다. 박노자는 자본주의에서는 서로 죽고 죽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기업이 친절을 무기로 중소기업을 견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본주의에 불평을 했으면 하는 맘에서 적어봤습니다.
Commented by 똘망소년 at 2008/07/14 12:08
박노자 선생은 사회주의자입니다. 따라서 말씀하신 전제를 받아들일 리가 없지요. 그분에게 이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잘못된 것입니다.
Commented by 無異 at 2008/07/16 13:54
오늘 kt에 동일한 상담을 받았습니다. "공감"이 아니라 "공감하는듯한 말"을 교육받은대로 뱉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저는 불편보다는 서비스에 대한 문의를 했는데 "불편하셨겠네요"라는 문맥에 안맞는 대답을 들어 좀 황당했습니다.
Commented by 수원 at 2008/07/16 17:00
솔직히,
예시를 통해서 의도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 예시를 각색한 것처럼 읽히는군요. 저런 응답이 과하면 오히려 짜증납니다. 문제는 아무 것도 해결 안 됐는데, "속상하셨겠군요. 힘드시겠네요." 이런 말투가 조금 반복되기 시작하면 무지 위선적으로 들립니다. 물론 저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요. 어떤 경우엔 쿨하게 대응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건, 장사하는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더군요. 고객에게 무조건 공감해준다고 잘 되는게 아니라는 걸요.

그런데 이 댓글 자체가 NVC 에 어긋나네요. 글머리에 "정말 좋은 경험을 하셨군요. 저도 그런 서비스 한번 받아 보고 싶네요~ 그런데..." 로 시작했어야 하는 건가요? :)
Commented by 임인택 at 2008/07/16 18:46
지금 읽고 있는 책 바로 전에 있는 책이 NVC 이고, 대화를 할때 NVC를 차츰 적용해가려고 하는데, 때마침 애자일 이야기에서 NVC 관련 포스팅을 읽으니 반갑네요. NVC를 읽으면서 머리속을 어렴풋이 맴돌던 컬럼이 있는데 (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2748 ) 이런 비판적 입장들이 있다 하더라도 이해 당사자들간의 대화에서 NVC는 아주 중요해 보입니다.
Commented by 행복코치 at 2008/07/18 01:48
이것이 NVC 이던가요? 감청 코칭 기법 같습니다만,

제가 아는 NVC 의 프로세스는

- 객관적인 사실 기술
- 자신의 감정 기술 ( 여기서는 상담원의 감정이겠지요)
- 감정의 이유
- 요구사항 부탁

인 것 같습니다만,

구석에 처박아 놓은 NVC 도서를 다시 꺼내 봐야 할 것 같네요.
Commented by 류은 at 2008/07/18 13:24
저는 상담원이 제 말을 받아서, 내용을 재조합해서 공감하는 문장으로 바꿔서 기계적으로 말하는 듯 해서 오히려 짜증나던데...
저는 당장 문제해결이 급한데, 자꾸 중간중간 그런 멘트가 섞이는게 시간 아깝게 느껴져서 싫었어요.
감정을 나누는 친구랑 통화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전화통화에서는 신속한 문제 해결이 포인트죠.
Commented by 쿠테 at 2008/07/18 22:08
문제 해결은 안해주고, "네 불편하셨겠네요."...라고 말해서 역으로 화내는 글인줄 알았습니다.
Commented by Vincent at 2008/07/30 14:17
아마 김창준 님은 본인이 알고 있는 패턴이 실생활에 활용되는 걸 보고 감동하셨던 게 아닐까요... 저도 같은 회사에서 유사한 응대를 받은 적이 있는데 오히려 더 성질만 돋구던 걸요 -.-;;
Commented by 아톰 at 2008/07/31 00:52
재밌는 사연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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