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 커닝햄의 125불짜리 모험
워드 커닝햄의 작품(그는 자신의 작업을 일종의 공공미술에 비유하곤 합니다)들을 보면 정말 머리를 "깨는" 기똥찬 것들이 많습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할까요. 대표적인 예로, 위키(타인의 편집 제약 -> 타인의 편집 환영)가 그렇고 CRC 카드("것"으로서의 표기 ->"함"으로서의 표기)가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런 발상 자체가 가능한 걸까요? 얼마전에 제 블로그에 워드 커닝햄이 프로그래밍을 하다가 예상 못한 상황에 처할 경우의 반응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런 태도가 한가지 답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여러번에 걸쳐 이런 내용을 좀 더 심도 깊게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OOPSLA 컨퍼런스는 워드의 동네에서 열렸습니다. 덕분에 저는 워드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워드가 어느날 오후 갑자기 저보고 시내에 나가보자고 하더군요. 컨퍼런스는 진행 중이었고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같이 길을 나섰습니다.

포틀랜드의 무료 기차를 함께 타고 가다가 워드가 갑자기 물어봤습니다. "제 사무실에 한번 가볼래요?"/"어... 좋죠." 그러자 워드는 재빨리 문 쪽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저보고 외칩니다. "지금 내리세요!"

이렇게 여기 저기 구경하다가 나중엔 파이오니어 스퀘어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쬐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워드는 아이가 둘인데, 종종(격주에 한번 정도?) 토요일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모험"(adventure)을 떠났다고 합니다. 말이 모험이지, 사실은 시내로 나오는 일입니다. 대신 아무런 계획없이 일단 나오고 봅니다. 때로는 운좋게 축제가 열리기도 하는데, 그러면 정말 재미있는 일들을 경험하겠죠. 간혹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합니다만, 뭐 그래도 좋은 경험이라고 하네요.

한번은 이런적이 있었답니다. 축제가 열리길래 그걸 보려고 차를 근처에 대놨는데 나중에 다시 돌아왔더니 차가 사라지고 없더랍니다. 바로 옆을 봤더니 경찰차 주차 장소였다고 하네요. 바로 옆은 경찰소였구요. 그래서 들어가서 50불인가 벌금을 냈습니다. 차량 보관소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이라 그곳으로 가려던 중, 지도 하나를 펼쳐들고 어쩔줄 몰라하는 아가씨를 봤습니다. 독일 처녀였다고 하는데, 워드와 아이들은 그 아가씨의 유스 호스텔을 찾아주려고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차를 찾으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제안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유스 호스텔에 데려다 주겠다고 했죠. 기차를 타고, 또 버스를 타고 어찌어찌해서 차량 보관소에 갔더니 차를 찾아가려면 75불을 내라고 했다네요. 그 돈을 내고는 독일 아가씨를 호텔에 데려다 줬답니다. 결과적으로 125불을 들이긴 했지만 재미있는 모험이었고, 또 마음 착한 독일 아가씨도 알게 되었던 훌륭한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저녁에 귀가해서는 아이들 엄마가 그다지 즐거워 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워드는 딱 이런 스타일입니다. 워드의 부인은 여행가기 전에 계획을 모조리 세우고 그대로 지키려고 하는 스타일이랍니다. 한번은 자가용을 타고 여행을 가다가 도로에 가축 탈출 방지용 도랑(Cow Trap)을 지나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워드와 아이들은 모두 차에서 내려서 그 도랑을 구경하고 연구하는 모험을 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뒷전이었겠죠.

저는 이런 모험 이야기를 듣다가 저도 모르게 "Serendipitous!"라고 외쳤습니다. 이 단어는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을 뜻하는 serendipity의 형용사형입니다.

AHD3에서는 이 단어의 어원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We are indebted to the English author Horace Walpole for the word serendipity, which he coined in one of the 3,000 or more letters on which his literary reputation primarily rests. In a letter of January 28, 1754, Walpole says that “this discovery, indeed, is almost of that kind which I call Serendipity, a very expressive word.” Walpole formed the word on an old name for Sri Lanka, Serendip. He explained that this name was part of the title of “a silly fairy tale, called The Three Princes of Serendip: as their highnesses traveled, they were always making discoveries, by accidents and sagacity, of things which they were not in quest of….”
특히 마지막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우리 말로 옮기자면, "그들은 우연과 현명함을 통해, 자신들이 찾고 있던 것이 아닌 것들을 늘 발견해 나갔다." 딱 워드적(Wardish)입니다.

워드는 이런 것을 Happy Accident(행복한 사고)라고 하기도 합니다. 뭔가 예상 못한 것을 만났을 때 긴장하면 학습이란 없습니다. 불행한 사고가 되어 버립니다. 하지만 그걸 즐거운 모험으로 생각하면 학습능력이 높아집니다. 영어에서 한 단어인 accident라는 단어는 우연(chance)을 뜻하기도 하면서, 부정적 함의의 "사고"(mishap)를 뜻하는 곳에서 쓰이기도 합니다.

오늘 당신의 모험은 무엇인가요?

--김창준

p.s. 저도 이번 여행에서 재미난 모험을 몇가지 했습니다. 다르게 보면 사고라고 생각할 것도 모험으로 보니 훨씬 마음이 편안하더군요.
by 애자일컨설팅 | 2006/10/31 11:22 | 트랙백 | 핑백(2)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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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Talk about Softw.. at 2007/12/13 20:04

... 겼지만, talk-with-hani.com의 시작은 첫사랑의 설레임처럼 상큼했습니다. ‘조엘 온 소프트웨어’를 접한 것은 일종의 ‘세렌디피티(Serendipity)’였습니다. 블로깅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정리하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동시에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Ruby on ... more

Linked at 빛을 담고 세상 넓히기 &r.. at 2008/04/19 21:17

... 진들이 있는 곳. « 약간의 자극이 필요할 때 논어 » 골든 에이지 이번 OOPSLA에서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전의 경험으로 얻은 식견은 더 많은 경험을 약속하는데 그런점에서 내 경험은 매우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Agile, OOP, Ultra Large Scale System, System Design, AOP 등등 많 ... more

Commented by 한주영 at 2006/10/31 14:39
최근 읽은 '우연의 법칙'을 다시 읽는 기분입니다. 다음과 같은 구절들을 보면, 딱이네요. 특히 마지막 문장을 보면 agile 방법론과도 통하는 듯합니다. 우연에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에서 나아가 우연을 찾아갈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 이따금 작은 기적이 일어날수 있음을 염두에 두라. 기적은 평범한 일이기 때문이다.
* 우연을 즐겨라. 우연에 더 많은 여지를 허락하며 살면 기회도 더 많이 온다.
* 우연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위해 고정관념을 버리고 우연에 시간을 할애하라.
* 불확실한 약속이 두뇌를 기분좋은 흥분상태로 만든다.
* 때로는 산만하게: 우연을 활용하려면 앞만보지 말고 좌우를 살펴야 한다.
* 기회포착: 얘기치않은 것을 창조적으로 대하라. 아인쉬타인이나 뉴튼은 다른 학자들도 알고있던 현상을 다른 시각에서 분석하여 위대한 이론을 만들었다.
* 크게 한발 가지말고 작은 스텝을 여러번 딛어라. 각 스텝에서의 피드백을 다음 스텝에 반영하라. 크게 한 스텝 가는것은 힘이 들 뿐더러 그동안의 수많은 factor들을 놓치게 된다.
Commented by 오광신 at 2006/10/31 15:20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treme Programming에서 말하는 Embrace Change와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컨퍼런스 무사히 마치고 오셔서 더 좋은 글들을 올려주시기를 기대할께요.

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은 나에게 어떤 모험들이 다가올까?" 기대하며 잠을 깨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Commented by utena at 2006/10/31 18:59
저랑 제 아버지가 딱 워드부인 스타일인데..앞으로의 생활양식에 따르려면 워드스타일로 바꿔야겠군요..첫번째의 계획한 모험은 진행중이니 이제 막모험(..)생활로의 전이준비를..
Commented by epro at 2006/11/02 13:06
워드님이 포틀랜드에 사시는군요~ 잠깐 포틀랜드에 가본적이 있는데, 숲이 많은 동네라 그런지 뭐랄까.. 차분하고 공부하기 좋은 곳이란 느낌을 받았었는데.. 워드님도 그런 환경의 영향을 받아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되진 않으셨을까요? 웬지 그 넓은 미국 땅 중에 워드님이 사시는 동네를 가봤다는 것이 반갑네요...
Commented by codepriest at 2006/11/03 09:31
요즘 프로그래밍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긴장하고 짜증내면서 살았는데요
이 글을 읽고 많이 깨달았습니다.
저도 워드적인 사고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싶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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