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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컴퓨터 쪽에서 큰 영향을 줬던 책, 그 중에서도 특히 감성적인 면에서 자극을 줬던 책을 꼽는다면 그 목록의 앞부분에 자리할 책이 있습니다.
Programmers at Work라는 책입니다. ![]() 우리는 어렸을 때 12권짜리 위인전 전집을 읽으면서 꿈과 포부를 만들게 됩니다. 컴퓨터 쪽에도 분명 위인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있긴 한데 그런 위인전 전집 같은 게 흔치가 않습니다. 그런데 이 PaW가 그런 위인전 전집의 역할을 해줍니다. 부제가 Interviews With 19 Programmers Who Shaped the Computer Industry입니다. 컴퓨터 산업을 형성한 19명의 프로그래머와 인터뷰. 멋지지 않습니까? 위대한 프로그래머들이 일하는 과정, 습관, 심지어는 그들의 코드 일부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원서는 출간된지 20년이 다됐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추천을 합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고 구글의 연구 감독(Director of Research)인 피터 노빅(Peter Norvig)이 몇 달 전에 아마존에 이 책의 서평을 썼는데 그 걸 소개하겠습니다. Read this to understand programmers당연히 별 다섯개입니다. 제가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월간 마소의 연재 번역 기사를 통해서였습니다. 90년대 초로 기억하는데, 당시에는 이 연재 기사가 PaW를 번역한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매달 한 명 씩 마소에 소개되었는데 원래 책에 나온 전원의 인터뷰가 실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93년도에 신어림 출판사에서 "천재프로그래머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창시자들"이라는 제하에 단행본으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마소의 인터뷰를 보면서, 또 번역본을 보면서(당시에는 원서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였습니다) 꿈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충격을 받습니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프로그래머들이 PaW를 강추한다는 이야기를 읽을 때만해도 "역시 그렇지"하는 정도였는데 어쩌다가 "19명의 프로그래머"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몇 번 스쳐 지나갔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그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번역서를 빼들고 사람 숫자를 세어보았습니다. 몇 번을 세어봐도 제 책에는 12명 밖에 없는 겁니다. 이 배반감, 이 허탈감, 이 상실감! 마치 어렸을 때부터 믿어왔던 도사님이 알고보니 반쪽짜리 가짜였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번역서에는 원래 19명인데 사정상(도대체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으나) 12명만 번역해 싣는다는 말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원저자의 머리말에서 19명에 대한 언급부분을 교묘하게 고쳐놓았습니다. 예컨대 It would have been foolhardy for us to attempt to identify the twenty or so best programmers in the world.라는 문장은 "그러므로 세계의 베스트프로그래머 가운데서 12명을 선정하는 일은 무모한 일일 수도 있겠다"로 살짝 바뀌어 있고, 번역서에 실리지 않은 사람에 대한 언급들은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식으로 책이 출판되면 19명 전부 번역된 책을 원하는 사람이 있어도 판권 때문에 책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번역서에 빠진 사람들을 보니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람들인데, 거기에 PFS: File의 제작자 존 페이지(John Page)가 있는 겁니다. PFS: File은 제가 "내가 생각하는 방식, 소프트웨어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해준 프로그램들"(Visicalc, dBase, WikiWiki, Wordstar, Adventure, MRT, Wizardry, Ultima 등이 포함됨) 중 하나로 꼽는 대단한 프로그램입니다. 그 프로그램은 현재까지 제 영감의 원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존이 빠지다니요!!! 비지칼크(최초의 스프레드쉬트)는 킬러앱의 대명사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비지칼크를 쓰려고 컴퓨터를 사는 사람도 흔했습니다. 컴퓨터 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소프트웨어이고, 수십년이 지나서까지 그 원형이 거의 보존되고 있는(엑셀 등에서) 소프트웨어입니다. 제가 비지칼크를 처음 접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고의 지평을 넓혔다고 할까요. 그런데 저는 비지칼크와 동급으로 PFS: File을 꼽습니다. PFS 시리즈에 대한 예찬은 노스모크 "프로그램예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원래 19명인데 번역판에는 12명, 즉 7명이 빠져 있는데 존 페이지는 소개했으니 나머지 6명은 누구일까요?
원서는 절판되어서 새로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없고 헌책을 구해야 합니다(저는 헌책을 다행히 구했습니다). 86년판이 있고 89년판이 있습니다. 내용상의 차이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류의 책이 몇 번 기획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전에 인사이트 출판사 사장님께 다음과 같은 제안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사장님, 공개해도 괜찮겠지요?) Programmers at Work라는 책을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과거에 월간 마소에서 한달에 한 사람씩 번역기사를 냈습니다. 그게 모아져서 단행본으로 나오기도 했구요. 제가 그 책을 보면서 많은 자극과 계발을 얻었습니다. 국내에도 분명 역사에 남을만한 훌륭한 개발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제대로 없어서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이런 책을 내는 작업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PaW처럼 재미있고 또 가치있는 책이 되려면 쉽지는 않습니다. 대상 선정을 잘 해야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해야하며, 인터뷰할 사람에 대한, 또 그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에 대한 사전 연구가 되어 있어야 하고, 될 수 있으면 직접 만나서 장시간 이야기를 해야 하는 등 조건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책이 국내에도 꼭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느꼈던 뜨거운 가슴, 위대한 프로그래머에 대한 동경심을 다른 어린 친구들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창준 p.s. 참고로 인사이트 출판사는 저와 인연이 깊습니다. 제 세 권의 책을 모두 여기에서 출판을 했습니다. 인사이트에는 어떤 사명감 같은 게 있습니다. 그냥 돈이 되는 책만 찍는다가 아니고 중요하고 필요한 책도 찍으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그래서 몇 부 팔리지 않을 걸 예상하면서도 출판하는 책들이 있는 걸로 압니다. 이런 인사이트에서 한국의 PaW를 내줬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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