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쓰는 능력
우리는 학창 시절 알게 모르게 글을 길게 늘려쓰는 훈련을 줄곧 받아왔습니다. 덕분에 짧게 쓰는 능력과 습관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뭐뭐에 대해 아는 대로 쓰시오라는 시험을 누구나 한번은 겪어 봤을 겁니다. 일단 자기가 아는 거 더하기 알 듯 모를 듯 한 거, 엊그제 엘레베이터 거울 옆에 붙었던 광고지,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엿들은 이야기, 엄마 아빠 사돈 팔촌까지 총출동해서 줄 수와 쪽 수를 늘여 봅니다.

대부분의 과제는 최소 몇 장 이상이라는 최소 한계를 줍니다(최대 한계를 주는 과제는 거의 기억에 없습니다). 대다수의 경우 장수가 많으면 점수도 좋습니다. 그만큼 학생이 노력을 많이 했다는 가정을 하기 때문이지요. 옛날에 원고지 장수 맞춘다고 어미를 모두 늘려쓰던(예컨대, 했다를 하였다, 하였던 것이다로) 기억 없으신가요?

이런 과제와 시험은 간결성을 격려하지 못합니다. 그나마 우리가 배웠던 학문 중 간결성을 중요시했던 것은 수학(및 인접 학문)일 것 같습니다. 가장 위대한 방정식으로 꼽히는 맥스웰의 방정식은 그 간결함 속에 많은 내용이 너무도 아름답게 접혀 들어가 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불릴만 합니다. 만약 그 방정식이 반대로 아주 길었다면 위대한 방정식으로 꼽힐 수 있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I still vividly remember the day I was introduced to Maxwell's equations in vector notation," he[Tony Watkins] wrote. "That these four equations should describe so much was extraordinary...For the first time I understood what people meant when they talked about elegance and beauty in mathematics or physics. It was spine-tingling and a turning point in my undergraduate career. After a year of rapidly dwindling interest in physics (and rapidly decreasing results!), my passion was reignited by four lines of symbols." <위 "가장 위대한 방정식" 링크에서 인용>

흥미롭게도 이 방정식은 앨런 케이(OOP의 아버지)나 워드 커닝엄(위키의 아버지), 제리 서스만(SICP 저자) 등 컴퓨터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그들은 단순함의 위력을 맥스웰의 방정식에서 배웠다고 말합니다. (간결성에 대한 훈련이 된 사람은 프로그래밍도 잘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I didn't have time to write a short letter, so I wrote a long one instead." 파스칼 외 꽤 많은 유명인들이 비슷한 논지의 명언을 했다고 합니다. 영작에 대한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The Elements Of Style에는 필요없는 말은 빼라(Omit Needless Words)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디자인 쪽에서는 에드워드 터프티가 '정보 전달력이 없는 점은 지워서 잉크사용을 최소화하라'는 말을 하지요. 그 외에도 단순성에 대한 알려진 명언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노스모크에 토론최소주의라는 페이지를 만들기도 했지요.

이런 간결성을 격려하려면 어떤 시험이면 좋을까요? 물론 단답형 시험이 최고이다 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되겠지요.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질문에 대해 충분한 답이 되었는지 먼저 보고 점수를 준 다음, 답의 길이를 분모로 해서 점수를 나누어 버린다면?

이런, 시간이 없어서 글이 너무 길어져 버렸군요. 죄송합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06/04/24 15:33 | 트랙백(5) | 핑백(3)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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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미리내 at 2006/04/25 10:08
매우 공감되는 글입니다. 진실을 알아내는 일도 아이들의 근육반응으로 모두 확인할 수 있다는 데이빗 호킨스가 생각납니다. 길고 장황한 글이나 말들은 거짓이거나 자기과시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Commented by 용기백배 at 2006/05/27 02:29
우연히 와서 그 유명하신 김창준님의 글을 탐독하다, 맨 마지막 문장이 재밌어서 답글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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