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의 기술
서점에서 우연히 "천재를 이기는 아이디어!"라는 신간을 봤습니다. 잘 되는 회의의 조건에 대해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시각이 무척 신선하고 재미있습니다. 남녀가 골고루 있어야 한다,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포함되어야 한다, 외동/맏이/두째가 골고루 포함되어야 한다 등.

저는 특히 남녀 성비가 회의에 미치는 영향을 절감한 적이 많습니다. 남자만 있는 그룹에 여성이 한 명이라도 새로 들어오게 되면 그 그룹이 활기를 띄고 아이디어 숫자도 확 늘어납니다. 신기하지요. 저는 이제까지 천 명도 넘는 사람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관찰해 봤습니다 -- 제가 강의를 하건, 컨설팅을 하건 매번 토론을 하게 하기 때문에 그럴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장 활기차고 재미있고 생산적인 토론을 하는 쪽은 십중 팔구 남녀가 섞인 그룹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 계획시 팀을 짤 때 일부러 동성 그룹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남녀 성비 말고도 토론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은 많습니다. 아랫 글은 제가 예전에 대학 후배들을 위해 쓴 글인데 우연히 다시 들춰보니 새롭네요.

어떻게 토론할 것인가.

둘이서 혹은 여럿이서 어떻게 토론을 하면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Separate What From How

토론을 진행하는 방식이 "어떻게"이고 그 토론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것(보통은 어떤 특정 의제)이 "무엇"이다. 이 양자를 분리한다. 대부분의 토론은 다음의 양상을 띈다.

  • 홍춘이 : 자, 그럼 우리 다음 파티는 어디서 하면 좋을까요?
  • 술퍼맨 : 강남에 새로 생긴 디스코텍이 수질이 우수하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 트림소녀: 지금이 어떤 시절인데 디텍 이야기를 하시나요?
  • 술퍼맨 : 아니, 수질이 우수하다는데... 제가 증명을 해드리죠. 수질이 우수하다면 어쩌고 저쩌고 하므로 이 공리와 이론을 이용하면...
  • 홍춘이 : 일단, 다른 분들의 파티 장소 추천부터 들어보면 안될까요?

지금 이 경우, "어떻게" 토론을 진행할 지에 대한 합의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고, "무엇을"과 "어떻게"가 뒤섞여 있다. 이렇게 해서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따라서, 양자를 분리한다.

우선은 토론을 진행할 방식에 대해 토론을 한다. 그리고, 이 방식의 대리인을 선정한다. 이 사람을 Facilitator라고 부른다. 그는 토의 내용에 대한 권한은 없지만, 진행을 정리하는 교통순경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모든 참가자는 이 방식을 따라 토론을 진행한다.

대부분의 경우, 먼저 의견을 일단 다 받아놓고, 각각의 장점을 다 이야기 하게 하고, 또 각각의 단점을 다 들어보고 하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Subgroup

한꺼번에 토론을 하기엔 사람이 너무 많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 하기를 꺼린다. 혹시나 자신이 한 말이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한다. 특히 의견/질문을 내는 사람이 별로 없는 상황은 악순환을 거듭한다. 의견을 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의견 내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낮은 위치의 사람(저학년, 하급자, 경험이 적은 사람)과 높은 위치의 사람이 섞여 있는 경우, 낮은 위치의 사람은 무언의 압력을 느끼고 의견 개진을 어려워 한다. 보통 한 두 사람 말 많은(혹은 경험이 많은) 사람이 전체 토론을 주도하게 된다.

이럴 경우 Subgroup 패턴을 사용한다. 사람 수가 적으면 참여도가 높아진다.

예컨대, 일단 전체 그룹을 모아놓고 간략한 문제 상황 설명과 목적에 대해 컨센서스를 이룬 후에, 학년별 소그룹으로 나누고 자기들끼리 알아서 대표를 선출하고 토론하도록 한다. 선배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자신들만의 의견을 개진, 정리하도록 한다. 얼마 후에 모든 그룹이 모여서 각 소그룹의 대표자가 토의 내용을 요약 발표한다. 이것에 대해 다시 전체 토론을 하고, 또 다시 Subgroup을 사용할 수도 있다.

전체 개미 사회에서 일을 열심히 하는 개미가 20%이고, 나머지 80%는 게으름뱅이라고 하면, 이 80%만 따로 독립시켜 놓으면 그 중 20%가 부지런한 개미가 된다. 전체 시스템의 모양은 변하지 않고, 각자의 역할이 조금씩 바뀌는 것이다. 말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예컨대 진행자, 강연자)이 있을 때, 이를 다시 소규모로 나누게 되면 대부분 참여도가 높아지게 된다.

또한 동류집단 사이에서는 좀 더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가능하다.

의견 발표를 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뭐라고 하거나, 질문을 강요하기 보다는 그들이 왜 그렇게 소극적인지를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될 수 있는 환경과 어포던스를 제공하라.



참고자료: How To Make Meetings Work

이 외에도 토론 패턴이랄까, 회의 패턴이랄까 하는 것들이 경험을 통해 꽤 모였습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하나씩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06/03/02 23:23 | 트랙백(3)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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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문화 블로그 at 2006/03/0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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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ationale at 2006/03/03 11:35
"의견 발표를 하지 않는 사람을 보고 뭐라고 하거나, 질문을 강요하기 보다는 그들이 왜 그렇게 소극적인지를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될 수 있는 환경과 어포던스를 제공하라."

깊이 동감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행하기에 어려운 일이기도 하구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Eljenaro at 2006/03/03 15:20
토론에서 저조한 참여율은 주최자나 진행자에게 언제나 넘어야 할 산입니다. 좋은 참고 되었습니다.
Commented by picnic at 2006/03/04 16:37
김창준님의 글은 언제나 마음에 와닿습니다. 토론에 패턴 아이디어를 적용한 것이 매우 참신합니다. 다음의 회의 패턴들도 기대가 되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Commented by 이종화 at 2006/03/09 13:40
아직 토론에 임하는 자세와 원활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데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상황이 발생되곤 합니다.
이는 커뮤니케이션에도 효율적인 방법과 기술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중요시 생각지 않는 풍토인것 같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저의 경우 토론의 주제 및 취지, 소요시간, 결과물 등 토론을 보다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절차 및 서로간의 지켜야할
약속(?) 같은것을 미리 칠판에 순서대로 기재한 후 토론을 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토론에 수동적이거나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마음가짐 또한 중요하다 봅니다.
저도 아직 많은 경험과 지식이 없기에 계속 시도해 보고 배워가는 입장이지만 원활하고 활기찬 토론이 일상 업무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인식아래 중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이종화 at 2006/03/09 14:05
Rationale님께서 실제로 행하기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시는것 같은데 XP적인 사고와 훈련을 하게되면(특별한 훈련이라기보다 업무중에 자연스레 기민한 방법을 차근차근 적용하였습니다.)토론뿐만이 아닌 개발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서로가 변화되는 모습을 발견하게되고 어느덧 Xper가 되어갑니다.
저희팀의 경우 첨엔 회의적이고 짜증스런 반응도 보였지만 지금은 토론에 소극적이거나 저해하는 행동을 하는 이를 보면 울분(?)을 터트립니다.
ㅋㅋㅋ

마지막으로 저희 막내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몇자 적어봅니다.

막네 : 이대리님, XP라는게 있데요 저희가 하는거랑 비슷한데 우리도 그거 해봐요~!
나 : 정말? 그게 그리 좋데? 그럼 해보자. 근데 지금 우리가 하는게 그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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