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퍼런스를 버려라
근래 국내에 IT 관련 컨퍼런스가 많이 열리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상당수가 컨퍼런스라기보다는 "강의"라는 전형을 따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식은 "설명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무언가"로 보는 인식이 지나치게 강합니다. 지식전파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강의(Lecturing)로 보는 전통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 이런 시각은 두가지 중요한 관점을 놓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사회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지적인 것입니다.

컨퍼런스와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회적 사건들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것이며 해당 공동체를 구성하는 바탕이 되며, 이 사회적 사건들을 통해 학습과 창조가 생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회적 면을 어떻게 살릴지 능숙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컨퍼런스 끝나고 수십 명 정도가 회식자리에 가서 길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고기 구워먹는 정도가 우리가 사회적인 면에 투자하는 거의 전부가 아닐까요.


워드 커닝햄과 본인의 짝 프로그래밍


예를 들어 위 사진은, 제가 OOPSLA 2005에서 워드(위키위키 창시자, OOP, 패턴, XP의 선구자 중 한 사람)와 컨퍼런스 중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같이 프로그래밍을 하는 모습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얼마나 가치있는 경험을 했을까요? 또 컨퍼런스에서는 저와 워드가 이런 것을 할 수 있게 어떤 어포던스를 제공했을까요? 국내의 컨퍼런스에서는 이런 경험이 쉽게 일어날 수 있을까요? 단순히 그런 사건들의 부재를, 참석하는 사람들 탓, 문화 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정당하거나 혹은 유용할까요?

인지적인 면에서는, 기존의 컨퍼런스들이 과연 참석자들의 지식 전파와 학습에 있어 인지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느냐 하는 의문을 해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강의실에서 존다면, 그 사람들이 졸지 않게 하기 위해 뭔가 컨퍼런스의 설계를 바꿔야 하는 것 아닐까요. 컨퍼런스에 온 사람이 방에 들어가서 강사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음 방으로 이동하고 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뇌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걸 고려하냐 이거죠. 우리는 은연 중에 "들으면 얻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사실 이런 컨퍼런스 와서 뭐 대단한 거 얻겠어"하고 기대치를 낮추어 버리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 기존의 컨퍼런스들은 너무 단선적입니다. 틀에 갖혀 있습니다.

저는 제 주변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형식의 컨퍼런스를 시도해 오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작년에 있었던 대안언어축제입니다. 이런 새로운 형식의 "사회적 이벤트"를 시행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만약 조직에 속해 있다면 기존 패러다임에 빠져있는 사람들(윗자리의 사람들 중 특히 명령과 통제 즉, Command and Control식 관리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런 이벤트를 저지하거나 변경하려고 할 것입니다.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쿤이 말하는 정상과학의 폭력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을 것이며, 조만간 강의 중심의 컨퍼런스는 퇴물이 될 것이라 장담합니다.

외국에서는 우리나라에 비해 비교적 다채로운(컨퍼런스 하나 속에서도 다채롭고, 각각의 컨퍼런스들이 또한 색깔이 다르고) 컨퍼런스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언컨퍼런스(Unconference)라는 것이 있습니다.

Agile Open is an unconference - for participants, by participants: we determine the actual program together at the start of the conference. We do not expect people to invent all the sessions on the spot, so we encourage you to put your IdeasForSessions on this wiki. Any ideas for sessions you would like to experience, or hear and see happen, as well as ideas for sessions you would like to organize and facilitate are welcome. 

분명 자율과 적응,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이런 컨퍼런스에 반대할 것입니다(이는 마치 XP에서 계획과 계획하기를 구분하는 것, 그리고 둘 중 후자에 가치를 두는 것을 연상케 합니다).

저는 종종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이나 거기에 속한 개발자 개인의 핵심적 문제는 기술적 장애보다 상상력의 빈곤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나은 컨퍼런스를 위해서는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06/02/25 12:08 | 트랙백(2)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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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애자일 이야기 at 2006/03/15 00:21

제목 : 웹 2.0스러운 컨퍼런스
최근 웹 2.0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저는 그 논의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으며, 또 일일이 따라가지도 않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최근 열렸던 웹 2.0 관련 컨퍼런스에 대해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니, 그 컨퍼런스 자체는 그다지 웹 2.0스럽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컨퍼런스를 버려라 참조) 롱테일을 이야기하는데, 컨퍼런스에서 몇몇 스타를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의 긴 꼬리는......more

Tracked from 애자일 이야기... at 2006/10/04 00:57

제목 : 대안언어축제를 넘어서...
\"우리 나라의 개발자들과 학생들 200여명이 큰 방에 모여서 자발적으로 토론할 의제를 제시해서 여러개의 소그룹을 만들고 사람들은 그 소그룹을 돌아다니며 함께 토론을 합니다. 또 ......more

Commented by 최재훈 at 2006/02/25 14:34
위트가 부족한 탓이겠죠.
Commented by calmglow at 2006/02/26 01:21
부족하기는 하지만 자바 개발자 컨퍼런스에서도 서로 소통가능한 형태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토론트랙을 준비하고 작년부터 계획하고 있습니다. 거의 3000명이 오는 행사에서 자유로운 토론 트랙을 준비해서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가 사실 쉽지가 않더군요.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저희도 나름대로 매회 경험을 통해 보다 나은 소통의 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Commented by 애자일컨설팅 at 2006/02/26 01:39
[적광] 어, 자바 개발자 컨퍼런스는 그 규모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부단히 이어 나간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는가가 관건이 되겠지. --김창준
Commented by 김형준 at 2006/03/07 22:07
4월에 개발자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의 구상은 4개의 주제에 대해 발표자가 발표하는 기존의 컨퍼런스와 같은 방식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존의 방식으로는 참석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얻어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부탁드리겠습니다.(babokim@unitel.co.kr)
Commented by 동치미 at 2006/03/18 21:00
작년 자바 컨퍼런스에 참석했었는데요.
저 역시 "뭐 대단한것 얻겠어"라는 생각으로 참석했던게 생각나네요..
이 글을 읽으며 많은 반성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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