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터디 모임 방법 몇 가지
며칠 전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글을 썼습니다.

오늘 AC2 코칭은 컴퓨터 프로그래밍 스터디 모임을 잘하는 법에 대해 했네요. 코칭 받으신 분이 아주 얼굴이 활짝 펴져서 "빨리 해보고 싶어요!"하면서 나가셨다는... ^^;


온오프라인으로 몇몇 분들이 이 글을 보시고 공유를 부탁하셔서,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스터디 모임 운영법, 혹은 참여자일 경우 할 수 있는 것 관련하여 강연하면 몇 시간 걸릴만한 내용인데, 그 중 일부만 공유해 보려고 합니다.

학습에는 학과 습이 있다

학습(學習)이라는 말은 논어의 학이시습(學而時習)을 일컫는 말인데요, 학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말하고, 습은 몸에 익힌다, 익숙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시"는 혹자는 때때로라고 번역하는데 그러면 좀 유치한 말로 들리고요(시간 날 때마다 가끔?), 저는 "때에 맞게, 적절한 타이밍에"로 번역합니다(도올 선생님이 그렇게 번역하시죠). 이 "시"가 참 중요한 요소인데, 이건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이야기해 보고요. 학과 습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죠.

대부분의 스터디 모임은 보통 학을 중심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공부할 책을 정하고 각자 챕터를 나누어 맡고 모일 때마다 한 챕터씩 담당자가 발표를 하는 식이죠. 매번 뭔가 새로운 걸 배우는 겁니다.

하지만 공부에는 습이라는 면도 필요합니다. 배운 것을 익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이번에 A라는 기술을 배웠다면, 절반의 시간은 A를 실제로 연습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혹은 습의 비중을 더 늘릴 수도 있습니다. 스터디 모임 시간 내내 습을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새로운 기술적 내용을 발표하거나 하지 않고 그냥 처음부터 우리가 풀 수 있는 문제를 함께 푼다거나 하는 것이죠.

사실 학과 습이 얽힌 것들이 많기 때문에 둘을 칼로 무 자르듯이 딱 나눌 수는 없습니다만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오실 겁니다.

보통은 학과 습이 섞여있는 스터디 모임이 좋은데, 그런 면에서는 워크북이 스터디에 적합합니다.

준비 없이 하는 스터디 모임

이 이야기는 예전에 바쁜 직장인을 위한 스터디 비결이라는 글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스터디 모임을 하기 위해서는 보통 그날 발제자가 미리 집에서 준비를 해와야 합니다. 그리고 오면 그 사람이 주도해서 진행을 하죠. 이 방법을 사용하기 힘든 경우들이 있습니다. 다들 너무 바쁜 것이죠 -- 아마 이런 경우라면 아예 스터디 참가를 안하려고 했겠지만. 발제자가 그날 내용을 준비 못해오거나 혹은 아예 참석을 못하거나, 또는 발제를 맡는 사람이 없거나 하는 경우입니다.

이럴 경우 스터디 모임에서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모여서 그 자리에서 학이나 습을 할 수 있습니다.

학을 한다면, 그 자리에 앉아 타이머 켜고 15분 셋팅한 다음, 제3장을 각자 읽어보자라고 합니다. 15분이 울리면 각자 읽은 부분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나에게 특히 영감을 준 부분, 의문점이 드는 것 등을 공유하며 서로 설명을 맞춰봅니다. 만약 이번에 할 분량이 너무 많아서 15분에 읽기 힘들다면? 그러면 예컨대 제3장에서 섹션이 나뉘어 있을텐데, 타이머 시작하기 전에 각자 고르게 합니다. 저는 3.1 보고 싶어요, 저는 3.5가 끌리네요 식으로요. 그리고 15분 동안 각자 읽고 나서 "조각 맞추기"를 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재미도 있고 공부도 많이 됩니다.

꼭 집에서 준비해와야지만 스터디 모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자리에 모여서 학을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예 그런 스터디 모임도 안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낫죠. 바쁜 직장인들이 하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같은 회사에 있다면 점심 시간에 샌드위치 같은 거 먹으면서 40분 정도 해도 되고요.

암묵지를 공유하자

형식지와 암묵지에 차이에 대해서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사실 전문성이 인정되는 대부분의 일들은 암묵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인 스터디 모임에서는 이 암묵지가 공유되지 않습니다.

이런 암묵지를 공유하는 정말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짝 프로그래밍, 더 크게 말하자면 짝 작업(Pair Work라고 저는 부릅니다)입니다. 두 사람이 한가지 매개체(컴퓨터 혹은 종이와 연필)를 두고 함께 작업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간단한 프로그래밍 문제를 두 사람이 한 컴퓨터를 사이에 두고 상의해 가며 풀어나갈 수 있고, 노트를 가운데에 두고 두 사람이 각자 펜을 하나씩 들고 함께 그려가며 문제를 풀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할 때 주의할 점은 어느 한 사람이 중간 매개체를 독점하지 않는 것입니다. 서로 번갈아가면서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께 프로그래밍을 하거나, 함께 문제를 풀거나 하면서 각자의 암묵지를 공유하고 배우게 됩니다.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짝 작업(및 짝 프로그래밍)의 교육적 효과는 검증이 되었습니다.

따로 또 같이

일반적 스터디는 발제자가 앞에서 발표하고 다른 사람은 그냥 듣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장점으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미 교육학에서도 발견했듯이 강연은 그다지 효과적인 학습법이 못됩니다.

앞서 말했던 암묵지를 공유하는 방법으로서의 짝 작업을 하면 각자 병렬로 밀도 높은 공부가 됩니다. 그러고는 다시 모여서 각자의 경험을 공유합니다. 어떤 실수를 했고, 뭘 배웠고, 뭐가 잘 안풀리는지 등. 그러면 다른 짝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배우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짝으로(아까랑 다른 사람과 짝을 해도 좋습니다) 나뉘어 해보고 또 다시 모으고를 반복합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짧은 시간 동안이더라도 개개인이 각자 뭔가 습을 해볼 기회가 생기고 훨씬 더 공부가 능동적이고 재미있게 됩니다. 공유 시간에 다른 짝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요.

다양성을 높이자

여러 교육학의 연구를 통해 복잡한 인지적 작업을 학습할 경우 다양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즉, 어떤 개념을 익힐 때, 한 가지 방법이 아니라 여러 방법으로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는 것이죠.

그래서 한가지 기술적 개념을 배웠으면 서로 이질적인 문제를 두 세 개 함께 풀어본다거나, 혹은 한 번은 컴퓨터로 해보고 한 번은 종이에 해보고 등 여러가지 방법을 써서 다양한 경험을 해봅니다.

이렇게 하면 재미도 있고 서로 다른 접근법을 비교하면서 배우는 점이 많습니다.

스터디 방식을 만들어 나가라

애자일 철학을 스터디에 적용하는 셈인데, 스터디 모임이 끝나면 다함께 오늘 스터디에 대해 회고를 합니다.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그걸 토대로 다음 스터디 모임의 방식에 조금씩 수정과 실험을 해나가는 겁니다. 사실 처음부터 어떤 스터디 방식이 좋을지 알 수가 없습니다. 생각하고 다르게 나오는 것도 많고요. 그래서 한 번 해보고 조금 수정하고 또 해보고 다르게 실험해 보고 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때 단순히 이전 스터디에서 이게 아쉬웠으니 요걸 고치자 하는 반응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해보면 재미있지 않겠니 하면서 실험적으로 시도해 보는 것도 권하고 싶습니다. 이걸 통해서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방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스터디 방식의 변화는 스터디 모임 리더가 일방적으로 정하지 말고, 참가자들과 함께 논의해가며 정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개인이 조직을 바꾸는 법을 참고하세요. 첫 모임은 스터디에 대한 각자의 포부를 나누고, 스터디 방식을 몇 가지 실험해 보고, 그 자리에서 스터디 방식을 정하는 회의만 하는 걸로 계획하는 것도 좋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실제로 사용했던 사례를 하나 들고 마칠까 합니다.

2007년 3월부터 대략 11월까지 했던 얼랭(Erlang)이라는 함수형 동시성 프로그래밍 언어 스터디였습니다. 제가 제안을 했었고, 박응주님, 노우경님, 김경수님 등이 꾸준히 참여를 하셨죠. 굉장히 재미있고 유익했던 스터디였는데 다음과 같은 점이 특히 좋았습니다:

  • 토일요일 오전에 한다 : 평일 저녁에 하면 야근 등으로 못오는 사람도 있고 했고, 또 일요일은 늦잠 자기 쉬운데 이렇게 스터디 모임을 오전에 잡아놓으니 오히려 일요일이 더 활력있게 되는 느낌도 있었고, 더 많은 분들이 고정적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보통 토일요일 오전, 점심 때에 주로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요일 오전이 제일 좋더군요. 하루를 활기차고 보람차게 시작할 수 있었다는... 
  • 연습문제가 있는 교재를 선택 : 각 챕터 끝에 연습문제가 있는 책을 선정했습니다. 얼랭의 아버지 중 하나인 조 암스트롱이 쓴 Programming Erlang이라는 책을 사용했죠. 학은 각자 집에서 해오고, 습 위주로 했습니다. 해당 챕터의 연습문제를 함께 풀거나 이미 풀어본 것을 공유하는 쪽으로요.
  • 지속적으로 스터디 방식을 개선 : 첫 모임은 참여자 전원이 스카이프로 온라인 회의를 해서 향후 스터디 방식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대략적인 방식을 잡았고, 다음 첫 오프 모임에서 좀 더 구체화 했죠. 그리고 그 이후로도 스터디 모임이 끝나면 회고를 통해 개선점 등을 뽑아내고 지속적으로 방식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번갈아 : 한 주는 오프라인에서 다 같이 모여 공부하고, 그 다음주는 온라인에서 두 사람이 만나 짝 프로그래밍을 하는 걸로 했습니다. 두 사람 짝은 주마다 바뀌는 걸로 하고요. 이걸 통해 따로 또 같이 효과를 잘 보았죠. 한 사람이 혼자 하려면 의지력이 떨어져도 자기 짝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하게 될 확률이 좀 더 높았던 거 같고요. 지난주에 두 사람이 작성한 코드를 오프 모임에서 공유하고 의견도 나누고 하니까 밀도 높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온라인 연습의 동기를 높이기 위해 각 짝이 진행한 바를 온라인에 체크 표시하도록 했습니다.
  • 단시간에 다양한 해법을 접하기 : 제가 로테이팅 인터벌 그룹 짝 프로그래밍이라고 부르는 방식인데, 당시에 고안했습니다. A, B, C, D, E, F라는 여섯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둥그렇게 앉습니다. 컴퓨터는 2대입니다. 간단한 문제 하나를 짝 프로그래밍한다고 칩시다. AB, CD, EF가 짝이 됩니다. 6분 알람을 설정합니다. 각 짝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면서 코딩을 합니다. 근데 컴퓨터가 2대죠. EF는 컴퓨터가 없습니다. 대신 종이와 펜으로 서로 대화하고 생각하고 하면서 코딩을 어떤 식으로 할지 생각하고 그림도 그려봅니다. 6분이 되면 각자 컴퓨터를 자기 왼쪽으로 넘깁니다. 그러면 AB가 작성한 코드는 EF에게 가고 CD가 작성한 코드는 AB에게 갑니다. EF가 작성하던 종이와 펜은 넘기지 않습니다. CD는 자기들만의 노트를 꺼내어 거기에 고민을 풀기 시작합니다. 이 때 중요한 점은, 새로 컴퓨터를 받은 AB, EF는 기존 코드를 지우고 새로 문제를 풀지 않습니다. 문제를 다 못풀었을 겁니다. 옆 짝이 작성하던 코드에서 시작합니다. 그걸 더 발전시킵니다. 무엇보다, 현재 코드가 자라온 무늬결과 방향을 살리면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즉,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뜯어고치면 안됩니다). 중복을 줄이고, 의도를 드러내는 리팩토링도 좋습니다. 종이와 펜으로 작업하게 된 CD는 우리가 직전에 코딩한 것을 리팩토링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상의도 해보고,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더라면 어땠을까 의논하고, 다음 단계로는 어떻게 할까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렇게 30-40분 정도 돕니다. 그러고 나서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짝을 바꾼 다음 다른 문제를 하나 더 풀거나 합니다. 이렇게 하면 짧은 시간에 다양한 접근법을 경험하게 됩니다.
  • 핑퐁 그룹 짝 프로그래밍 : 실험했던 또 다른 그룹 짝 프로그래밍 방법입니다. 네 명일 경우 하기 좋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네 명씩 나누어도 됩니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앉고, 컴퓨터 한 대를 갖고 핑퐁 프로그래밍을 했습니다. TDD로 개발을 하는데, 테스트 실패 지점에 컴퓨터를 넘깁니다. 즉, 1) 현재 테스트가 통과하게 만들고 2) 리팩토링하고 3) 새 테스트를 추가해서 4) 실패하는 걸 확인한 다음 5) 컴퓨터를 넘깁니다. 컴퓨터가 없는 동안은 다음 테스트에 대해 의논하거나 조금 전 구현한 것의 다른 방법을 종이에 그리고 의논하고 합니다. 이 때 아까와 비슷하게 이미 있는 코드의 결을 살리면서 코딩합니다. 중간에 컴퓨터가 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 있는 것이 무척 효과가 좋았습니다.
예시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스터디를 들기는 했지만 거의 모든 방법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경영 서적 스터디도 이런 식으로 진행을 한 적이 몇 번 있고요.

재미도 있고 공부도 많이 되는 스터디 모임 하시길~!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4/12/04 14:34 | 트랙백 | 덧글(2)
좋은 회고를 가려내는 법
2014년 연말이 다가오고 있네요. 여러분들은 요즘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계시나요? 아마도 여러 일을 마무리 하시느라 분주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기년회라는 모임을 10년 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한해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기억하는 자리이죠. 망년회의 반대입니다. 이 기년회라는 모임은 제가 애자일에서 많이 사용하는 "프로젝트 회고"(Project Retrospectives)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입니다.

애자일에서는 실험과 반성(회고)을 통해 학습을 증진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뒤돌아보다란 글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에서 이 회고 방법을 배워서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하지만 회고를 하면서 타성에 젖어, 무슨 효과가 있는지, 왜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냥 하는 분들도 꽤 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분들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고 계시더군요. 우리가 회고를 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정말 다양한 회고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는 것만 50가지 정도 되는데요. 오히려 이렇게 다양한 회고 방법들 때문에 더 혼란을 느끼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고요.

오늘은 연말이 가까워지기도 해서, 좋은 회고를 가려내는 법, 내가 회고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법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특히 개인 수준에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개인 수준의 회고가 주는 이득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200여건이 넘는 연구가 누적되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스트레스 관련해서 병원에 덜 가고
  • 면역 체계가 개선되고 (보조T세포의 반응, B형 간염 항체 수준, 간 효소 수준 등)
  • 심박이 내려가고
  • 간과 폐 기능이 향상되고
  • 기분이 좋아지고
  • 삶 만족도가 높아지고
  • 우을증 증상이 줄어들고
  • 입원 날짜가 줄어들고
  • 결근이 줄어들고
  • 실직 후 재취업이 빨라지고
  • 상처가 빨리 낫고
  • 대학 평점(GPA)이 좋아지고
  •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이 개선되고
  • 부부관계와 애인관계가 좋아집니다
예를 들어, 대학 초년생에게 자신의 괴로웠던 경험에 대해 15분 정도 글을 쓰게 하는 것을 3-4회 한 경우, 학생들은 병원에 적게 가고(정신적, 혹은 육체적 일 모두에서), 성적이 개선되며, 대인관계도 좋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효과가 대학 생활 내내(4년) 지속되었습니다.

이 연구의 가장 권위자인 펜베이커(James Pennebaker) 교수는 한 가지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분명 회고의 이득이 있는데, 왜 개인차가 발생할까 하는 것이었죠. 왜 어떤 사람은 더 큰 이득을 얻는 반면 왜 다른 사람은 이득이 적을까 하는 것이었죠.

펜베이커는 사람들이 회고한 내용을 컴퓨터로 통계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중요한 차이점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즉, 회고한 내용을 통해 이 사람이 얼마나 회고에서 이득을 얻을지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첫번째는 긍정적 감정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회고를 하면서 긍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말을 많이 쓰면 쓸수록 그 효과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정적 감정에 해당하는 단어가 너무 적으면 그 효과는 사라졌습니다. 부정적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많을 필요는 없지만 있기는 해야 한다는 것이죠. 즉, 좀 더 낙관적으로 회고하되 부정적인 사건을 인정해야 그 회고의 효과가 높다는 것입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넘어가는 것은 회고의 효과를 깎아먹습니다.

두번째는 이야기의 구성입니다.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정도를 드러내는 것이 소위 "인지적 차원"의 단어들인데, 생각하다, 깨닫다, 믿는다 등의 통찰 혹은 자기반성적 단어들과 왜냐하면, 효과, 근거 등의 인과관계 단어들이 중요했습니다. 근데, 단순히 이 인지적 차원의 단어가 얼마나 많으냐가 아니고, 초반에 비해 후반에 이 단어들의 빈도가 증가한 정도가 회고의 효과를 예측했습니다. 인지적 차원의 단어가 많아진다는 것은 소위 아귀가 맞는 "스토리"가 구성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초반에는 뒤죽박죽으로 경험이 섞여있지만 점진적으로 거기에서 의미를 찾고 정합적인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는 경우에 효과가 높았습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잘 들어맞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과정 중에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회고 때마다 누군가가 동일 사건에 대해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한다면 그 회고에서 얻을 것이 별로 없다는 말이 되겠죠. 우리는 회고를 통해 동일 사건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세번째는 시각 변화입니다. 회고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대명사(I, 나)를 주로 쓰다가 다음번에는 다른 대명사(he, she, you, we, it)를 주로 쓰고 다시 자신을 나타내는 대명사를 많이 쓰는 식으로 전환이 반복되는 경우 더 많은 이득을 얻었습니다. 말하자면, 시각의 전환이 일어나야 좋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의 입장에서도 사건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상담심리에서나 범죄심리학에서도 여러번 밝혀졌습니다. 내담자가 제3자에 대한 비난만 계속하다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이야기할 때 상담자는 그 내담자가 중요한 변화의 경계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증인 심문을 할 때에 시각 전환이 이루어지면 더 많은 내용을 기억하고, 기억 오류가 줄어든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정리하자면 앞서의 세 가지 요소가 있는 경우 회고에서 더 많은 이득을 얻었습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회고를 이 측면에서 평가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회고할 때 나는(혹은 다른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전반적으로 긍정적 감정을 많이 겪는가?
  • 회고할 때 나는(혹은 다른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생각을 더 적극적으로 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가?
  • 회고할 때 나는(혹은 다른 사람들은) 시각의 전환을 자주 하게 되는가?


만약 이 세가지 면에서 부족함이 느껴지는 회고라면 별로 얻는 것이 없는 회고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회고 방법을 바꿔야 할 것이며, 이 때 이 세 가지 면에서 풍성해지는 회고 방법인가 하고 따져보는 것이 좋은 지침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말 의미있는 회고의 시간 가지시길 바랍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4/12/03 11:46 | 트랙백 | 덧글(3)
탐색적 논문 읽기
이 글은 퍼듀대학교에서 HCI 연구를 하시는 이지수님의 페이스북 글에 제가 댓글로 달았던 것입니다. 블로그에서 소개하면 좋을 것 같아서 여기에 옮깁니다.

이 방식을 저는 논문 분류하기(Paper Triage)나 탐색적 논문 읽기(Exploratory Paper Reading)라고 부릅니다. (애자일 방법론, 탐색적 테스팅 등의 원칙 등을 응용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제가 회사에서 연구할 때 우리 팀에서 썼던 방식과 비슷하네요.

1) 팀이 5명이라고 하고.. 우리가 리서치 하고 싶은 주제가 있겠죠. 처음에 시간을 정합니다. 예컨대 1시간(이 시간은 우리가 전체 프로세스에 투자하고 싶은 시간에 맞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각자 흩어져서 1시간 동안 개인별로 논문 검색을 합니다(이 부분이 중요, 집단 사고를 피하기 위함). 뭔가 눈에 띄는 논문이다 싶으면 무조건 프린터로 찍습니다.

2) 시간이 다 되면 다 같이 한 자리에 자기가 찾은 논문 인쇄물을 갖고 모입니다. 각 논문은 스테이플러로 찍어옵니다. 테이블 한 가운데에 그 논문들을 다 모읍니다. 당연히 각자 논문검색을 했으니 중복인쇄된 논문도 있을 겁니다(이 게 사실 좋은 메커니즘임 -- 발견될 확률을 높여줍니다).

3) 이제는 테이블 위에 논문을 쌓아둘 세 군데의 자리를 정합니다. 하나는 "다시 한 번 제대로 봐야 한다", 하나는 "시간 되면 다시 보자", 마지막은 "볼 필요 없을 것 같다". 5명이 테이블 주위에 둘러앉아(마치 가운데 불이 있는 캠프파이어처럼) 가운데 무더기에서 논문 하나씩을 집어들어 간략하게 읽고 빨리 판단해서 세 개의 무더기 중 하나로 옮깁니다(triage). 보통 논문 하나에 1분 이내의 시간을 들이면 적당합니다.

4) 테이블 가운데의 논문(미분류된 것)을 모두 분류했다면 이제는 다음 단계입니다. "다시 한 번 제대로 봐야 한다"에 해당 하는 논문 뭉탱이만 두고 나머지는 모두 테이블에서 치웁니다(만약 남은 시간에 비해 그 논문 숫자가 적다면 "시간 되면 다시 보자" 그룹도 넣습니다). 이렇게 해서 논문 숫자가 너무 많다면 앞의 3) 단계를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아니면 다음 단계로 진행합니다.

5) 이렇게 추려진 논문들의 숫자가 적당하다면 이번에는 좀 더 세밀하게 갑니다. 각자 테이블에 남은 논문을 대략 읽고(맘에 드는 것은 좀 꼼꼼히 읽고 아니면 대충 읽어도 됨) 읽었으면 논문 첫장 우상단에 자기 싸인을 합니다(서로 다른 색깔 펜을 쓰면 좋음). 그리고 논문 텍스트 중에서 우리에게 중요하다 싶은 부분에 커멘트를 달거나 줄을 긋거나 하고 자기 싸인을 거기에도 붙입니다. 테이블에 올려진 논문들 모두에 모든 사람의 싸인이 붙는 걸 목표로 합니다.

6) 마지막으로는 논문 하나씩 뽑아서 각자 의견, 소감 등을 나누며 정리합니다.

이렇게 한 번 하면 다섯명이 반나절이면 수백편도 소화합니다. 해당 주제에 대해서 대략적 지형도를 갖게 되죠.


이 방식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여러명이 동시에 논문 읽기를 협동적으로 할 수 있다
  • 빠른 시간에 엄청난 양의 논문을 분류하고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회의를 하지 않고(집단사고를 피함) 각자 병렬로 하면서도(시간 효율성과 의견 다양성) 의견을 주고 받는 효과(상호 교류에서 새로운 발견)가 난다
  • 논문을 읽는 행위를 다양한 층위로 할 수 있다(제목만 보기, 초록도 보기, 도표나 테이블 중심으로 보기, 특정 부분 꼼꼼히 보기 등)
  • 끝나면 해당 주제/분야에 대한 대략적 지형도가 생긴다
여러명이 하는 경우를 예로 들었는데, 사실 혼자서도 가능합니다. 한번 해보시면 재미도 있고 효과도 높다는 것에 놀라실 겁니다. 저에게 AC2 과정을 하면서 이런 연구 논문 읽기를 주제로 코칭 받으신 팀장님이 있는데, 이전에는 팀에서 리서치할 때 각자 며칠에 걸쳐 따로 조사를 했고 지루하고 재미도 없었는데 이 방법을 배운 이후로 다같이 모여앉아 피자 먹으면서 게임하듯 즐겁게 리서치하게 되었고 시간도 훨씬 짧고 효율적이 되었다고 하시더군요. 특히 문헌 조사라는 일을 개인 활동이 아니라 팀 활동으로 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4/11/26 14:2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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