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2 과정의 시초 : 나를 바꾼 6개월의 백수 기간
오늘은 AC2 과정이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소개를 드릴까 합니다. 2009년부터 벌써 7년째 교육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 중이며, 현재는 19기를 모집 중(4월 21일부터 약 2.5개월 동안 지속되는 과정이며, 오늘 공개 모집을 시작합니다 -- 참여를 원하시면 서두르세요 ^^ 다음 레벨1 과정은 10월 중순에나 열립니다)이고, 대략 150여명이 이 과정을 졸업했습니다.

왜 잘되지?


AC2의 시초는 2008년 12월 경으로 돌아갑니다. 당시 회사 대상으로 컨설팅을 주로 하던 때였는데 2008년 하반기는 말 그대로 수요가 공급 능력을 초월하던 시점이었습니다. 동시에 몇 개 회사를 컨설팅하고 있었고 그 외의 요청도 줄을 잇고 있었죠. 어떻게 보면 마냥 행복한 시점이었지만 저는 의문이 하나 들었습니다. "왜 이렇게 잘 팔릴까?"

고민을 해봤더니 2004년말 다니던 회사를 나와서 할 일 없이 그냥 평소 하고 싶던 공부나 해보자 하고 몇 달 간 열심히, 원없이 공부했던 그 뒷심이 그 동안의 추진력이 되어서 여기까지 온 것 아닐까 하는 분석에 다다랐습니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공부했다기보다는 내가 늘 하고 싶었던 공부를 했던 기간이었습니다. 그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더군요.

그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현재에서 미래로 생각이 옮겨가더군요. 어, 만약 지금 상태로 3-4년 후가 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 가장 바쁘고 잘 팔리지만 쌓아두는 것이 없으니 나중에는 점점 힘아리가 떨어져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기감이 느껴졌습니다.

사업을 중단하다


그래서 가장 잘되던 시점에 사업을 올스톱시켰습니다. 함께 하던 분에게 몇 달치 월급을 드리고 함께 반년간 공부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몇 년을 살아남을 원동력을, 뒷심을 키우자는 것이었죠. 그분도 고맙게 동의를 해주셨고요.

대략 6개월간 어떤 사업 제안이 와도 거절을 하리라고 굳은 결심을 하고("반드시 거절해주리라"는 마음이었으나 실제로 그 당시 제안이 거의 없었다는 슬픈 뒷이야기가...), 6개월 동안 말 그대로 원없이 공부를 했습니다.

중요하지만 미뤄왔던 공부


그게 2009년 1월부터 6월까지였습니다(사실 공부는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짐). 당시 했던 공부는 크게 보면 두 갈래였습니다. 하나는 책 스터디였는데 두 가지 책을 거의 같은 시기에 공부했습니다. Quality Software Management라고 하는 제럴드 와인버그의 역작 3부작과, Nature of Order라고 하는 크리스토퍼 알렉산더(패턴의 아버지)의 역작 4부작을 각기 다른 스터디에서 공부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저자들의 평생의 역작이며 읽기가 쉽지 않은 책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은 되지만, 즉 나를 많이 바꿀 것이라 생각은 들지만(혹은 나를 많이 바꿀 것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에) 읽기를 미뤄왔던 대표적인 책이었죠. 1월이 되면서 과감하게 두 연작을 공부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스터디를 모집했습니다. QSM 스터디(QSM 스터디 모집 공고)와 NOO 스터디(NOO 스터디 모집 공고)가 그것이죠. 그때가 2009년 1월 초입니다.

스터디를 모집한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책 자체가 쉽지 않고 다양한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공동의 노력으로 스터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고(이 점을 보여주는 생물 및 건축 전문가 모집 공고), 또 하나는 여럿이서 하면 내가 비교적 중도 포기를 덜하고 끝까지 공부를 지속할 확률이 높아서였으며(예컨대 QSM 스터디는 제 사무실에서 하도록 해서 제가 안가면 스터디가 안되게 만드는 등 여러 방법을 사용했고 그 결과 두 스터디 모두 한 번도 빠지지 않았죠), 무엇보다 여럿이서 하면 더 즐겁고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나를 분석하다


이렇게 스터디 모임을 한 것이 첫번째 공부였고, 두번째 공부는 제 과거 작업을 분석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컨설팅을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보면 컨설팅 받은 것을 더 발전시켜서 잘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과거의 상태로 그대로 돌아간 곳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 저의 선택은 두 가지이죠. 하나는 "그 사람들이 잘 못해서 그래, 난 잘 해줬고 내가 떠날 때만 해도 잘되고 있었다구"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냐, 내가 뭔가 부족하게 해줬던 거야, 내가 더 제대로 했더라면 더 발전했겠지"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전자를 선택하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제 발전은 없겠죠.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 관점에서 뼈아픈 실패들을 분석했습니다. 이 때 도움이 된 것이 개리 클라인의 작업(CTA 인지적 작업 분석)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엇이 지속하는 변화를 만드는가를 분석했고 몇 가지 중요한 요소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 결론은 현재 수준의 컨설팅은 부족하다였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교육을 설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AC2였습니다. 당시 제가 제공할 수 있는 베스트는 AC2에 모두 녹아넣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9년 11월에 AC2 과정이 시작되게 되었죠. 물론 그 이후 과정을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것을 실험하고 배우면서 AC2 과정 자체를 여러번에 걸쳐 업그레이드 하였고 현재는 2009년의 첫 AC2 과정과 차이가 많습니다만 기본적 원칙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변화 예술가(Change Artist, 제럴드 와인버그가 쓰는 용어로 조직에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를 키워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


AC2를 만들고 발전시키는 약 7년의 기간 동안 나름대로 일과 "뒷심 키우기"를 병행하는(6개월간 사업을 스톱하지 않으면서 ^^;) 방법들을 고안해 실천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AC2가 질적인 면에서 도약을 했던 지점들도 몇 번 있었고요. 하지만 아직 아쉬움도 있습니다. 2009년에 AC2를 설계하면서 그렸던 큰 그림을 아직 다 채우지 못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중간에 AC2 과정을 세 개의 레벨로 나눴습니다. AC2 레벨2, 레벨3가 추가된 셈이죠. 레벨2는 현재까지 2회 진행을 했고, 몇 달 뒤 3회가 열립니다. 내년에는 레벨3를 해서 소위 AC2 3부작을 완성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AC2를 만들게 된 6개월간은 정말 제 커리어에 있어 비약적 발전이 된 시기였고 그 이후 이런 도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런 비약적, 단절적 발전의 지점이 언제였나요?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5/03/13 15:02 | 트랙백 | 덧글(0)
지금 하는 일들을 절반의 시간 안에 해야 한다면?
며칠전 AC2 교육을 받고 있는 분과 이미 받은 분들이 함께 소통하는 메일링리스트에 좋은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지금 하는 일들을 절반의 시간 안에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현실적 질문이었는데요. 제가 나름 답을 달아봤습니다.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여기에도 공유를 하려고요.

제가 사용해 본 방법인데, 대략 300%의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결과는 놀랍습니다. (참고로 이 방법은 예전에 쓴 "창의성의 아이러니"에 나온 여유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입니다)

예컨대, 1시간 단위로(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이 단위시간은 달라야할텐데, 보통은 1시간을 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일을 계획해서 하고요, 1시간 돼서 알람 울리면 무조건 스톱합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상관없이 스톱합니다. "아, 5분만 더하면 끝날텐데" 같은 거 알짤 없이 말이죠. 그리고 애초에 1시간 내에 끝내기로 한 것이 실제로 1시간 지났는데도 안 끝나면 무조건 다음 선택지 중에서 골라야 합니다. 하던 걸 이어서 마저 한다는 무조건 없습니다(5분만 더하는 것도 안됨).
  • 하던 일은 내버려 두고 일단 다른 일을 1시간 동안 한다. 더 우선순위가 높은 일로 선택하는 것이 핵심. 하던 일은 아예 안하거나 아니면 나중 시점에서도 중요하면 하거나. 흥미로운 점은 더 우선순위가 높은 일을 하다 보면 아까 하던 일은 안해도 되는 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함(다음에 나오는 세가지 질문 묻기랑 병행).
  • 하던 일은 그만두되, 그 일로 성취하고자 하는 결과(outcome)를 생각해서 전혀 다른 접근법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X라는 도구를 기본설치하는 데 1시간이면 되겠다 생각해서 했는데, 개고생을 하고 한 시간해도 마치지 못한 경우, 내가 X를 설치해서 얻으려던 것이 뭔가를 생각해 보고 전혀 다른 접근법(예컨대 도구 없이 수작업으로 하거나, 1시간 내에 되는 다른 도구를 하거나 등)을 생각해 내야 함.
  • 다른 사람과 상의한다.
무조건 1시간을 초과하면 위 세가지 중에서 고릅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예상외로 오래 걸리는 "삽질"들인데, 이 방법을 쓰면 삽질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시간짜리 일을 완료했냐 아니냐 여부에 관계없이, 1시간이 끊어지는 마디마다, 그리고 좀 더 큰 마디(예컨대 하루, 1주일 단위)마다 다음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 이 일 정말 꼭 해야하는가? 안하면 어떻게 되나? 회사에 그게 얼마나 중요한가? 를 여러번 반복해 묻습니다. 그래서 안해도 되는 일을 많이 쳐내는 것이 관건
  • 이 일 내가 꼭 해야하는가? 다른 사람이 해도 되나? 다른 사람이 하는 게 더 회사에 좋은가? 누구 도움을 받아야 좋은가 등을 여러번 묻습니다.
  • 이 일로 성취하려는 목표(outcome)가 무엇인가? 이걸 여러번 묻고, 더 값싸게 하는 방법은 없나를 묻습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반드시 이 방법이어야 하는가를 여러번 묻습니다. 그러면서 대략 90% 이상 수준을 절반 이하의 비용으로 하는 더 값싼 방법을 찾습니다.
위 질문을 최소한 1시간 단위로 합니다. 즉 위에서 "이 일"은 1시간씩 하는 일에 대해 묻는 겁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하루나 1주 단위에서도 이걸 묻고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팁은, 이걸 팀 수준에서 실천하면 효과가 더 커집니다. 서로에게 위 질문들을 하고, 같이 답을 찾아보는 것이죠. 또 혼자 하면 중간에 끊기가 힘든데 남이 도와주면 스톱하기가 좀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5/03/06 11:42 | 트랙백 | 덧글(3)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이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스티브 잡스만큼 인문학의 부흥(?)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일단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고, 그 사람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효용가치를 스티브 잡스를 빌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인문학과 우리가 말하는 인문학이 동일하다는 전제이지요.

보통 우리가 말하는 인문학은 전통적으로 문사철, 즉 문학/언어, 역사, 철학을 말합니다. 그럼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은 무엇일까요? 통상 영어로 liberal art나 humanities를 인문학으로 번역하고 있긴 합니다만, 스티브 잡스가 그 단어를 어떤 의미로 썼는지 제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마음을 헤아릴 수야 없겠지만 잡스가 직접 했던 말에서 짐작을 해보는 것이 가장 근사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소위 인문학을 언급한 부분을 보자면, 세간에 공개된 것은 두 군데가 대표적인데요, 약간 의미 사용이 다릅니다.

첫번째는 최근 발견된 잃어버린 인터뷰(Lost Interview)에서 언급되는 부분으로 젊은 시절의 스티브 잡스(1995년도)가 프로그래밍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인문학(liberal art)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특히 이 부분인데요,

So I view computer science as a liberal art. ... It should be something that everybody learns, you know, takes a year in their life, one of the courses they take is, you know, learning how to program.

그래서 저는 전산학을 교양으로 봅니다. ... 그건 모든 사람이 배워야하는 것이고요, 뭐, 살면서 일 년 걸려 들어야 하는 수업 중 하나로, 프로그래밍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죠. (번역은 김창준)


잡스는 이 인터뷰에서 컴퓨터 사이언스(잡스가 이 맥락에서는 프로그래밍과 같은 말로 쓰는 듯 합니다만 전산학자들은 프로그래밍과 전산학을 구분합니다)를 교양 과목 수준에서 모두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인문학(liberal art)은 그냥 교양이라는 정도의 번역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특별히 문학, 역사, 철학을 지칭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사철을 공부한다고 잡스가 말한 프로그래밍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두번째 부분은 비교적 많이 알려진 부분으로 2011년 제품 발표회의 한 장면입니다. 폴라로이드사의 공동설립자인 에드윈 랜드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히 드러납니다(자세한 내용은 월터 아이작슨의 잡스의 전기에 나옵니다).



... it’s technology married with liberal arts, married with the humanities that yields us the result that makes our hearts sing. ... they are talking about speeds and feeds ... that is not the right approach to this. ... even easier to use ... even more intuitive ... the s/w and the h/w and the applications intertwine in an even more seamless way ...

... 그것은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으로, 우리 가슴이 노래하게 하는 결과를 내주는 인문학과 결합하는 겁니다. ... 그 사람들은 속도와 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그것은 이런 일에 바른 접근법이 아닙니다. ... 훨씬 더 사용하기 쉽고 ... 훨씬 더 직관적이고 ...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애플리케이션이 훨씬 더 매끄럽게 엮이고 ... (번역은 김창준)


그가 생각한 인문학(liberal arts, humanities)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속도와 양에 신경 쓰는 것에 비해 제품을 더 쓰기 쉽고 직관적으로 만들고 총체적 경험을 만들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단순히 역사나 철학, 문학을 공부한다고(혹은 기술 배우고, 역사나 철학을 배워서 서로 버무린다고) 이런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런 일을 날마다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인문학 논쟁의 김희원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에 대한 이해’이다. 이는 컴퓨터를 공부한다고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백 번 양보해서 잡스와 저커버그가 ‘천재’라고 가정하더라도 천재들과의 경쟁에서 취할 전략은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통한 번뜩이는 아이디어여야 한다. 이는 인문학 없이 나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삼성전자에서 인문학 전공자들을 대거 채용한 점은 오히려 기업이 현실을 더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인문학이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견 스티브 잡스의 말과 일치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인문학과 "사용자에 대한 이해"는 현실적으로 거리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공부한다고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할 때 컴퓨터를 공부하는 것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잡느냐에 따라 또 다른 말이 될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더 쓰기 쉽고, 더 직관적이며 총체적 경험을 가능케 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전문성 연구에 따르면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심지어는 인접)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분야 한정성)이 거듭 밝혀졌습니다. 세계적인 생물학 전문가가 물리학에 대해서는 초보 수준이라든가 말이죠. 하지만, 과거에는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했고, 예컨대 라틴어 같은 것을 훈련하면 전반적인 사고 능력이 향상된다고 믿어서 그걸 배우고 가르쳤죠. 하지만 여러 연구를 통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단순히 문학, 철학, 역사에 밝다고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분야는 통상 UX(사용자 경험, User Experience)라고 부르는 매우 전문적 분야로 오랜 기간의 공부와 수련을 필요로 합니다. 신선한 착상으로 해결되는 수준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애플에서도 역사, 철학, 문학 전공자를 뽑아서 저런 일을 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궁금한 사람은 애플 구인 페이지에서 직무설명을 검색해보시길 권합니다. 예를 들어 Philosophy, Literature, History 등으로 검색했을 때 소위 인문학으로서의 그런 주제를 언급하는 직무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컨대 사용자 경험 설계자의 구인 직무 설명을 보시죠(2015/3/4 현재 시점. 향후 사라질 수 있음).


Description

...
Researching UI design and development techniques to find innovative and elegant solutions to complex UI problems
Designing application user interfaces (including information architecture and interaction design)
...

Education

BS or MS in Human Computer Interaction, Human Factors, Information Science, Graphic Design with emphasis on UI design, or Computer Science with emphasis on UI development


직무

복잡한 UI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이고 우아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UI 설계와 개발 기법을 연구한다
애플리케이션 UI를 설계한다 (정보 아키텍처와 인터랙션 설계를 포함)

교육

인간 컴퓨터 인터랙션(HCI), 인간공학, 정보 과학, UI 설계에 중점을 둔 그래픽 디자인, UI 개발에 중점을 둔 전산학에서 학사나 석사 학위

(원문 링크. 번역은 김창준)


자기 회사의 DNA에 기술과 "Liberal Arts"의 교차점이 있다고 하는 애플 조차도 인문학 전공자를 별도로 뽑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김희원씨가 언급한 삼성에서 인문학 전공자를 "대거" 채용했다는 부분은 잡스의 말을 지나치게 해석해 벌어진 해프닝일 수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렇게 뽑은 인재들에게 결과적으로 무슨 직무를 맡기고 있냐 하는 부분이 되겠죠.

저는 이 글을 통해 인문학의 가치를 깎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잡스가 더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문사철을 한 인문학자를 뽑아야 된다는 수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확대 해석이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그가 통상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을 이야기할 때 그 맥락에서 "기술"은 성능과 기능 중심 사고로, "인문학"은 그 외적인 것, 편의성이나 심미성, 일상적 경험 속에서의 긴밀한 결합 등에 대한 추구 정도로 보면 되지 않나 싶습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5/03/04 13:34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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