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직에서 새 방법론이 먹히지 않는 이유
심리치료 연구에서 기념비적인(그러나 불행히도 크게 조명받지 못한) 연구(D.F. Ricks, 1974)가 하나 있습니다. 아이였을 때 뉴욕주에서 심리치료를 받은 어른들을 조사했을 때 정상적인 생활을 잘 하고 있는 건강한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무엇이 이들을 가르는 중요 요인이었을까요. 어떤 방법/기법으로 심리치료를 받았느냐, 어디에서 받았느냐 등은 관련이 없었습니다.

심리치료를 한 사람이 누구였느냐가 중요했죠. 특정 심리치료사에게서 치료를 받았던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치료사를 일컫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슈퍼슈링크(supershrink -- 뛰어남을 뜻하는 super와 정신과의사를 일컫는 shrink의 조어).

상담학계에서 공통 요인(Common Factors) 학파로 불리우는 이멜과 웜폴드는 맥케이와 함께(McKay, Imel, Wampold, 2006) 소위 "치료자 효과"라고 불리우는 요인을 좀 더 연구했습니다. 그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 치료에 있어 상위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정신과의사가 설탕약을 준 경우(플라시보 조건)가, 하위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의사가 항우울제(이미프라민)를 준 경우보다 더 높은 치료 효과가 있었습니다. 설탕물을 받아 먹더라도 뛰어난 의사한테 가는 경우에 치료 효과가 더 높다는 놀라운 결과가 나온 겁니다.

이런 치료자 효과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이후 많이 진행되었는데, 결과들을 보면 상담에서 어떤 기법(예컨대 인지행동치료, 로저리안, 게슈탈트 등)을 쓰느냐보다 치료자가 누구인가가 상담효과에 더 큰 영향을 준다고 거듭 밝혀졌습니다. 어떤 기법을 사용하느냐는 것은 통상 상담 결과의 분산에서 5% 이하만을 설명한다고 봅니다(최대한 높게 봤을 때). 반면 상담자간의 차이에서는 뛰어난 상담자는 평균적인 상담자보다 10배 빠른 치료효과를 보여줬습니다.

치료자 효과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심리 상담의 효과 연구에서는 주로 이런 "치료자 효과"를 제거하고 기법, 방법론의 효과를 연구하려고 해왔습니다. 대표적인 방법이 매뉴얼을 제공하고 그걸 따라하게 하는 것이죠. 하지만, MI라고 하는 비교적 근거가 많은 상담 기법의 메타분석(70여개의 임상시험 대상) 연구에 따르면 매뉴얼이 제공된 경우 치료의 효과 크기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절반 밖에 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Hettema, Steele, Miller, 2005). 저자들은 자신의 다른 연구에 근거해, 상담사가 매뉴얼을 정확히 따르면서 명시된 단계를 끝내려다가 내담자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단계를 마무리한 부작용이 생겼다고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매뉴얼이 말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상담사들이 할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마이클 폴라니는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라고 암묵지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죠. 사실 더 나아가서 모든 지식이 근본적으로는 암묵지라고 역설했습니다. 어떤 기법이나 방법론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극히 부분적이며 오로지 그것으로만 지도를 삼기에는 위험이 클 수 있는 거죠. (제가 저번에 쓴 실수는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에 "만약 ~하면 ~하라"라는 널리 인정되는 규칙이 있는가, 그런 규칙들을 잘 따른다면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생각해 보세요. 만약 그런 규칙이 커버하는 부분이 넓다면 해당 분야는 "단순한 도메인"에 해당합니다. 소위 베스트 프랙티스가 먹히는 분야이고, 결과 예측이 가능한 분야이죠. 하지만 반대로 맥락을 가로지르는 보편적 규칙들이 별로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결과 예측하기가 어렵고 불확실성이 높다면 해당 분야는 "복잡한 도메인"(cynefin framework에 따르면 complex domain)이 됩니다. 통상 사람 요소가 차지하는 비율이 많을수록 복잡한 도메인에 속합니다. 상담이 그렇죠. 이런 복잡한 분야일수록 어떤 특정 기법의 효과보다도 치료자 효과가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슈퍼슈링크들을 찾고 그들을 연구하고 육성해야 합니다(여러분들 주변의 슈퍼슈링크들은 누구이고 평소 행동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러면서 이런 연구를 토대로 우리가 사용하는 기법과 방법론들을 더 발전시켜 나가야겠죠. 아마 그 모습은 여러 방법론들의 통합적인 모양새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 이야기로 넘어가보죠. 상담과 소프트웨어 개발은 다른 부분이 같은 부분보다 더 많겠지만 두 분야 모두 예측이 어렵고 복잡한 도메인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아마도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가 더 예측이 어렵고 더 복잡하다고 주장을 하실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면 여기에서도 이런 치료자 효과가 기법/방법론 효과보다 크거나 적어도 필적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해보면 어떨까요. (여담이긴 한데, 애자일 방법론 중 특히 스크럼에서 앞서 말한 암묵지가 필요 없는 듯이 이야기되는 경우 -- 즉 단순한 규칙들을 지키면 된다고 하는 경우 -- 를 보면 우려가 됩니다. 복잡한 영역인데 단순한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할까요?)

새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에 우리가 어떤 방법론을 쓰느냐는 문제보다도 누가 참여하는가가 훨씬 더 압도적인 문제가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애자일 방법론 도입을 원하는 팀장이라면 "나는 어떤 팀장인가"를 먼저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어떤 팀장인지가 전혀 바뀌지 않으면서 새 방법론만 도입한다고 무슨 효과가 있을까요. 반대로, 항우울제보다도 강력한 설탕물을 쓸 수 있는 의사처럼, 별 볼일 없어보이는 방법론일지라도 그걸 처방하는 팀장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가 있을 겁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4/03/01 21:43 | 트랙백(1780) | 덧글(5)
실수는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남이, <최종병기 활>에서 (해당 부분 영상)


여러분들이 실수에 대해 갖는 느낌은 어떻습니까? 어떻게든 피해야 하고 알려지면 망신이다에 가깝습니까, 아니면 좋은 학습의 기회가 될 수 있다에 가깝습니까? 여러분의 조직 문화는 어느쪽에 가까우리라 생각하십니까?

미국 산림청의 산불 정책이 10년도 전에 바뀐 것 아십니까? 예전에는 산불 예방을 강조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산불 예방 때문에 더 심각한 산불이 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불(불 대신 화재라고 재앙을 암시하게 쓰면 안됨) 생태학에서는 불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면 오히려 그 지역에 가연성 물질이 과도하게 축적되게 해서 결과적으로 한번 불이 나면(어떻게든 불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에) 엄청난 규모의 불이 나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자연상태에서는 적절한 시기에 작은 규모의 불이 나서 이런 큰 규모의 불이 잘 나지 않습니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론 와키모토는 불 공개 정책 관련하여 미의회에서 일부러 불을 질러야 할 수도 있음을 증언했죠. 그래서 산불 구호도 좀 바뀌었고, 이제는 불 예방에서 불 관리 쪽으로 초점이 바뀌었습니다.

라마누잔의 연구에서는 의학계의 실수(미국에서 의료사고로 죽는 사람 숫자가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많습니다)에 대해 이런 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미 중서부의 유명한 병원인데, 2006년 신생아실의 아이들에게 헤파린(혈액 항응고제)을 기준치의 1000배 투여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1주일에 걸쳐 5명의 간호사가 총 6명의 아이들에게 그렇게 투여를 했고, 그 아이 중 3명이 죽고 나머지 3명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그 병원에 2001년 헤파린 과다 투여로 비슷한 사고가 있었고(그 때는 환자가 사망하지는 않고 적절한 후속 조치가 되었음), 이 사고를 계기로 안전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그런 면에서 훌륭한 병원으로 인정되고 있었다는 점이죠. 특히 헤파린에 대해서는 실수를 예방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조사에 따르면 이 병원의 안전 프로세스가 너무 신뢰할 만(reliable)했기 때문에 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약사가 헤파린을 준비할 때 새로운 SOP에 의해 실수할 여지가 없어졌다고 믿은 간호사들은 더 이상 약 투여시의 확인을 신경쓰지 않게 되었죠(실제로 그 방법이 효과적이기도 했고요, 그 사건 전까지는).



마이클 프레제(Michael Frese)는 회사에서의 실수 문화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실수 문화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실수 예방과 실수 관리. 실수 예방은 행동에서 실수로 가는 경로를 차단하려고 합니다. 즉, 실수를 저지르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근데, 사실 이것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전문가도 1시간에 평균 3-5개의 실수를 저지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 세상은 그렇게 엉망이 아닐까요? 그것은 전문가들이 실수를 조기에 발견하고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기(early detection & quick recovery) 때문입니다. 이렇게 실수는 어떻게든 할 수 밖에 없다. 대신 그 실수(예컨대 코딩하다가 == 대신 =를 쳤다든지)가 나쁜 결과(서버가 도미노 현상을 내며 죽는다든가, 그걸로 수술 기계가 오동작을 해서 사람이 다치거나)로 되기 전에 일찍 발견하고 빨리 고치면 된다는 겁니다. 이 태도를 실수 관리라고 합니다. 사실 하나의 경로가 더 있는데, 이미 결과가 난 실수에 대해서는 학습을 통해 다음 행동할 때 이렇게 하자는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이를 2차적 실수 예방이라고 함).

실수 예방 문화에서는 실수를 한 사람을 비난하고, 처벌하고, 따라서 실수를 감추고 그에 대해 논의하기 꺼리며 문제가 생겼을 때 협력도 덜하게 됩니다. 반대로 실수 관리 문화에서는 실수가 나쁜 결과를 내기 전에 도와서 빨리 회복하는 것을 돕고, 실수를 공개하고, 실수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거기에서 배우는 분위기가 생깁니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데, 실수 연구의 역사를 보면, 초기에는 기술적인 부분만 보다가 그 다음에는 인간적인 부분(결국 80%가 사람 실수라든지)을 보다가(특히 1979년 쓰리마일섬의 사고가 계기가 되었음), 이제는 문화적인 부분(컬럼비아호 사고가 계기가 되었음)을 이야기 합니다. 소위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라고 하는 것이 이 문화의 일부입니다. 항공 분야에서도 이것이 중요해서 CRM(Crew Resource Management) 등에서 이런 부분의 개선을 가져올 수 있었죠.

그런데, 이런 실수 관리 문화가 회사에 정말 도움이 될까(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비용이 많이 들텐데 비용 대비 효과가 어떤가) 하는 의문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연구가 있습니다. 우선 회사 문화가 실수 예방보다 관리에 가까울수록 그 기업의 혁신 정도가 더 높습니다. 그리고 실수 관리 문화일수록 회사의 수익성(총자산이익률로 계산)이 더 높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실수가 없으면 학습하지 못합니다(고로 직원들에게 실수하지 말라고 하는 조직은 학습하지 말라고 하는 지시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학습이론의 기본입니다. 즉, 실수 관리를 하는 문화일수록 학습을 더 잘합니다.

자 그러면 이걸 조직과 개인 차원에서 활용하는 간단한 방법을 몇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직 차원의 이야기는 회사의 정책을 바꾸고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고 경영자나 임원의 의사소통방식을 바꾸고 하는 등의 좀 더 굵직굵직한(그리고 중요한) 것들이 있지만, 문화적으로 작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실수 축제

첫번째는 "실수 축제"라는 걸 하는 것인데 이 행사의 구조를 응용하면 여러 곳에 활용하실 수 있을 겁니다.
  1. 업무 중(혹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점심시간) 대략 한 두 시간 내외(인원수에 따라 바뀌어야 함)의 시간을 잡습니다.
  2. 될 수 있으면 다양한 업무 분야(혹은 다양한 프로젝트 관련) 사람들이 모이게 합니다.
  3. 먹을 것, 마실 것을 준비해 두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4. 행사의 취지(집단적 학습)를 설명합니다.
  5. 각자 "실수 기억하기" 양식(A4 한장)을 받고 거기에 글을 채웁니다. 시간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한 사람당 한 장만 쓰게 합니다.
  6. 양식은 다음을 참고로 합니다.
    • 제목 : 이 실수에 기억하기 좋은 이름을 붙입니다.
    • 관련인 : 해당 실수에 관련있는(결과에 영향을 주거나 받거나) 사람들을 적습니다
    • 타임라인 : 가로로 수평선을 그리고 어느 시점에 실수가 발생했고, 언제 최초 감지 되었고, 언제 최초 회복 작업을 시작했는지 표시합니다. 그 외에 중요한 사건들이 있으면 역시 표시합니다.
    • 실수 시점 분석: 실수 시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입니다. 구체적으로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원래는 뭘 했어야, 혹은 안했어야 했는지를 적고, 왜 그런 실수가 일어났는지 적습니다.
    • 감지(detect) : 무엇을 보거나 듣고 처음 실수를 감지했는지. 그리고 당시에 어떤 (부정적) 미래가 펼쳐지리라 추측했는지.
    • 회복(recover) : 회복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당시 다른 옵션은 무엇이 있었는지. 왜 그 옵션을 선택했는지.
    • 결과 : 그 후에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나.
    • 교훈 : 다음번에 비슷한 실수를 어떻게 더 빨리 감지할 수 있을지, 어떻게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을지, 혹은 실수 발생 전 시점의 행동 자체를 어떻게 교정하면 좋을지.
  7. 3-5명 정도가 한 그룹이 되도록 나눕니다. 처음 그룹은 되도록 같은 프로젝트, 같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게 합니다.
  8. 한 사람씩 자신의 실수를 소개합니다. 자신이 채운 양식(특히 "타임라인")을 보여주며 설명을 합니다.
  9. 같은 그룹에서 듣는 사람들은 아래 세 가지의 질문 혹은 의견을 말합니다(이 때 아래 목록에 없는 비난, 질책이 나오지 않게 진행자가 주의할 것):
    • 해당 사건, 실수의 순수 팩트를 묻는 질문 (왜보다는 누가, 무엇이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같은 질문이 좋음)
    • "나도 실은..." 종류의, 자신도 비슷한 (혹은 "그 정도는 장난이야" 같은 더 심한) 실수를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 너무 길지 않도록 주의.
    • 감지와 회복 면에서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혹은 다음에는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떤가 같은 제안.
  10. 한 사람의 실수로 대략 10-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면 적당합니다.
  11. 동일 그룹 내에서 한 명 더 실수를 공유합니다. (시간이 부족하면 스킵 가능)
  12. 이번에는 아까 같은 그룹이었던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면서 새롭게 그룹을 형성하게 합니다. 여기에서 다시 실수 공유하기를 반복합니다(위 7번부터).
  13. 전체 인원수에 따라, 그리고 시간 제약에 따라 몇 번을 반복하고 난 뒤,
  14. 이번 달(혹은 올해) 최고의 실수 투표를 합니다. 기준은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실수"라고 설명을 해줍니다.
  15. 최고 득표를 한 실수에 대해 시상을 합니다(비싸지 않지만 내 돈 주고 살 것 같지 않은 재미난 상품, 혹은 근처 카페의 음료권 등이면 충분합니다). 수상자 소감을 합니다.
  16. 맨 처음 만들었던 그룹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그룹 내에서 소감을 나눕니다.
  17. 그룹별 소감을 돌아가며 발표하고 마칩니다.
위 실수 축제에는 사실 많은 이론과 연구 내용이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전체가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사용하시는 것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참가자들이 정말 재미있어하고 몰입해서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이 행사에서 꼭 지켜야하는 부분은 심리적 안정감을 해치지 않고, 더 높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간식 같은 걸 곁들여서 비공식적 행사인 듯 느끼게 만드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놓치면 몇 시간을 해도 행사가 비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신뢰가 이미 심각하게 깨어진 조직이라면 이 행사를 하는 걸 좀 더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셔야 할 겁니다.

이번에는 개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세 가지인데, 역시 응용하면 조직 차원에서도 효과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실수 노트

개인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첫 번째는 실수 노트 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중고등학교 때 많이들 쓰는 오답 노트 같은 겁니다. 본인이 뭔가 중대한 실수를 한 게 있다 싶으면 그날 실수가 일단락 되고 난 후에 노트에 기록을 합니다. 외부적 사건의 순서 같은 것 외에도 인지적인 부분을 많이 써야 합니다. 위 실수 축제의 양식을 참고하면 좋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중대한 의사결정(이 결정 때문에 그 이후의 행로가 다르게 펼쳐졌다고 할 수 있는)을 내린 시점이나, 상황판단(situation awareness, 아 이 산이 아닌갑다 같은)이 바뀐 지점 중심으로 정리해 보면 좋습니다. 저는 삽질 노트라고 하는데, 제가 30분 이상 삽질한 것이 있다 싶으면 꼭 이 노트(개인 위키)에 적습니다. 적기 시작한지 10년 이상 된 것 같습니다(오늘도 낮에 한 편 썼네요 ^^;).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실수 분석에서 끝나지 않고 그래서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 실수 축제를 참고하세요.

하마터면 사건과 외삽법

두 번째는 외삽법(extrapolation)이라고 부르는 기법입니다. 말이 좀 어렵습니다. 선분이 있을 때 그걸따라 더 연장하는 걸 말합니다. 이 기법은 전문성 연구에서 나왔습니다. 전문가가 빨리 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소위 니어 미스(near miss)라고 하는 게 있습니다. 저는 "하마터면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실수가 있어서 하마터면 사건(위 실수 모형에서 "결과"에 해당)가 날 뻔 했는데 다행히 큰 일이 없었던 사건들을 일컫습니다. 이 니어 미스를 공유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심리적 안정감을 갖기가 비교적 쉽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누가 비난하거나 할 확률이 낮겠죠. 두 번째 큰 장점은 빈도수가 많다는 겁니다. 전문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여러번 일어나야 합니다. 학습의 기본은 반복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건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는다면 학습은 요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중대한 사건들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습이 없어 더 위험한 겁니다. 그러나 하마터면 사건은 자주 있습니다. 찾아보면 아주 많습니다. 이걸 활용하면 학습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미연방항공청의 ASRS(Aviation Safety Reporting System)가 좋은 예가 될 겁니다. 거기에는 하마터면 사건이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저장되고 있습니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보고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아도 되며, 밝히더라도 그 신분은 보호되며, 심지어는 그 실수가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해도 당사자는 보호받습니다(의도적이지 않았고, 범죄가 아니었다면). 이 ASRS를 통해 항공산업은 안전성 면에서 많은 발전을 했다는 것을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겁니다. 이런 부분은 다른 산업에서 본받을만 하지요.

개인적으로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때 오늘의 하마터면 사건을 생각해 봅니다. 만약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면 뭔가 잘못된 겁니다. 하루 8시간 이상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하마터면 사건이 몇 개는 있습니다. 내가 만약 그 때 이걸 대신 이렇게 했더라면, 혹은 운이 안좋아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다면 개고생 했을텐데 하는 거를 찾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칩니다.

  1. 그 때 운이 좋았는데 뭐 하나가 잘못되었더라면 엄청난 개고생을 했을까?
  2. 그 개고생은 어떤 식으로 펼쳐졌을까? 어떤 도미노 현상을 일으켰을까?
  3. 만약 그 개고생이 펼쳐졌더라면 내가 어떻게 빨리 알아챌 수 있었을까?
  4. 만약 그 개고생이 펼쳐졌더라면 내가 어떻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을까?
  5. 내가 평소 일을 하는 방식을 수정하거나, 혹은 실수를 저지른 후 감지, 회복하는 과정에서 교정할 것이 있을까?
역시 앞에서 이야기한 실수 축제나 실수 노트의 내용을 여기에 접목해서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 인터뷰와 회복력의 네 가지 요소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입니다. 우선 회복력 이야기를 합시다. 공학 분야에서도 이 실수 관리 문화와 비슷한 이야기가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공학에서는 이걸 회복력(resilience)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죠. 이 분야의 권위자 중 한 명인 에릭 홀네이겔(Erik Hollnagel)은 회복력이 네 가지의 능력으로 구성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모니터링 - 대응하기 - 배우기 - 예상하기


모니터링은 중요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의 약한 신호(weak signal)를 감지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대응하기는 그걸 감지했을 때, 혹은 사고가 터졌을 때 위급 상황 하에서 빨리 거기에 맞게 대응해서 회복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배우기는 과거의 성공 혹은 실패 사례에서 배워서(그리고 남과 공유해서) 앞으로의 행동을 조율하는 겁니다. 예상하기는 앞으로 어떤 일(성공이건 실패건)이 벌어질 잠재성이 있다는 걸 예상해서(과거에서 배우기를 토대로 하여) 그에 맞춰 행동을 조율하는 것입니다.

자기 분야의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서 이 사람의 실수 관리 능력에 대해 인터뷰를 합니다. 이 때 이 네 가지 능력 모형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전문가의 능력을 배우려면 그 사람이 답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그 사람의 전문성의 핵심은 그 사람이 모르는 상황을 접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진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여기에서 확 벌어집니다. 전문가가 실수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대처하는가, 차후에 행동을 어떻게 조정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특히 감지하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난생 처음 먹는 종류의 고기를 먹으러 갔습니다. 종업원이 고기 몇 점을 불판에 올려주고 갑니다. 근데, 언제 먹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돌아오는 답이 "익으면 드세요"라면 어떻겠습니까? 우리에게는 언제 익었는지 판단할 전문성이 없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 부분을 간과해서 교육이 실전에서 비효과적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문제가 터졌을 때 뭘 할지를 배우는 걸 넘어서 문제를 감지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인터뷰를 할 때에는 앞서 이야기한 실수 축제, 실수 노트, 하마터면 사건과 외삽법 모두의 내용을 총동원하셔야 할 겁니다.



이상 여러가지 방법을 편의상 조직 차원, 개인 차원으로 나눠 이야기하긴 했으나 사실 그런 차원 구분 없이 응용 가능합니다. 이 방법들을 잘 활용하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하긴 한데,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연습하면 더 많은 도움을 얻을 겁니다.

물론 이 방법 외에도 많습니다. 교육을 하는 분이라면 고려해볼만한 방법으로는 실수 훈련이 있습니다. 보통 교육에서는 학생들의 실수를 최소화하도록 설계합니다. 교육 중에 실수를 적게 해야 실전에서 실수가 적을 거 아니겠냐는 논리죠. 하지만 연구결과는 반대입니다. 교육 중에 실수를 더 유도해야 오히려 응용력이 더 높아지고(교육학에서는 전이transfer라고 함) 실수가 줄어듭니다. 다양한 실수를 경험하는 걸 격려하고, 실수 사례를 배우고, 실수시에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가르치는 교육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전문가에게 실수 대처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요.

마지막으로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어 봤을 실수 예방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모 팀에서는 개발자별로 서버를 수십대씩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서버 하나가 죽었나 봅니다. 아침에 부장이 화가 나서 팀장을 자기 방으로 불렀습니다. 욕을 좀 먹었겠죠. 팀장이 그 방을 나오자 마자 했던 행동이 저한테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XXX 누구 담당인가요?"

그 때부터 개발자들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각자 키보드에 머리를 조아리고 내 서버인지 아닌지 확인하기에 바빴거든요. 시간이 조금 흐르자 한 두 명씩 밝은 얼굴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변의 (역시 밝은 얼굴의) 동료에게 커피 한 잔 하러 가자고 권합니다. 사람이 한 명 두 명 줄어듭니다. 마지막에 한 명이 손가락에 땀나도록 키보드를 치고 있더군요.

나중에 그 팀장은 팀 퍼포먼스 문제로 팀원으로 좌천당했습니다.

(논문 등의 레퍼런스를 더 달 예정입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4/01/01 22:51 | 트랙백 | 핑백(2) | 덧글(9)
몸 값 안 올리기
지난 12월 7일 OKJSP 컨퍼런스에서 "몸 값 안 올리기"란 제목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그 강연에 대해 문의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 내용을 블로그에 옮깁니다.  말투부터 거의 실제 강의 내용 그대로를 옮기려고 해봤습니다. (편집 중입니다 ^^;) 다만 당일날 일정이 뒤로 밀려서 강의시간이 조금 짧아진 관계로 생략했던 그로이스버그의 연구 같은 부분은 이번에 채워넣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창준입니다. 저는 현재 애자일 컨설팅의 대표로 있으면서 개인과 조직이 변화하는 걸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몸 값 안 올리기라는 제목으로 여러분들에게 50분간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왜 제목이 몸 값 안 올리기인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또 기분 나빠하시는 분들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자는 okjsp 게시판에서 고용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강연 아니냐 하고 의심하시던데, 이 강연은 우선적으로 피고용자를 위한 강연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 제목은 좀 과장된 표현이고 다른 시각을 가져보자는 말인데 수사적으로 말을 한 번 비틀어 봤습니다. 제가 어떤 의미에서 "다른 시각"을 말하는 것인지는 제 강의를 들으시면서 차츰 이해가 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씀 드리지만 저는 몸 값 올리는 것이 나쁘다, 문제있다,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 삶의 철학이 있으니까요.

아, 그리고 이 강연의 내용은 제 개인적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은 연구와 실험에 의해 뒷받침되는 증거가 있는 내용들입니다. 근거 자료들을 각 장표에 언급을 해두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보시고요. 참고로, 통계적 결과라는 것은 이런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 100% 이렇다 혹은 0% 저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므로(이 강연에서 언급하는 심리학, 사회학, 경영학 연구가 대부분 이렇죠) 해석하실 때 흑백 논리의 오류에 빠지시지는 않을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이 강연 내용은 나중에 제 블로그에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죠.

우선 왜 몸 값을 올리려고 하는가 하는 질문을 해봅시다. 대부분 성공하려고 혹은 행복하려고 하는 답을 하실 것 같습니다. 뭐 그 외에도 다양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시겠죠. 본 강연은 경력 성공이나 행복을 목표로 생각하면서 몸 값을 올리려고 하는 분들에게 더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은 좀 더 귀기울여 주시면 좋겠네요. 자, 그러면 여기에서 말하는 경력 성공과 행복이 어떤 성공이고 어떤 행복인가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각자 생각이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경력 연구(Career Research)라고 하는 연구 분야에서는 경력 성공을 두 가지로 나누어 봅니다. 객관적 경력 성공주관적 경력 성공이 그것입니다. 전자는 말 그대로 당사자의 의견에 상관 없이 평가할 수 있는 성공입니다. 통상 연구에서는 임금과 조직내 직위를 변수로 삼습니다. 정량적이죠. 임금이 높아지고 직위가 올라가면 객관적으로 더 성공한 겁니다. 간단하죠. 주관적 경력 성공은 개인의 주관적 평가가 들어갑니다. 개인이 심리적으로 성공했다고 느끼는가, 혹은 직무에서 얼마나 만족하냐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몸 값을 올리는 부분은 객관적 경력 성공과 직결되어 있겠죠. 그럼 주관적 경력 성공은 어떨까요? 이 부분에 대한 답은 잠시 미뤄두죠.

잠깐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죠. 몸 값과 행복의 관계는 어떨까요? 연구에 따르면[1][2] 몸 값이 올라갈수록 행복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으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고[0](연구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나 임금으로 행복의 차이의 약 5% 이내만 설명할 수 있음), 그 행복 증가 정도가 점차 줄어든다는 일종의 한계 효용 체감 법칙이 적용됩니다. 즉, 수입이 월 백만원인 사람에게 백만원 느는 것과 월 천만원인 사람에게 백만원 느는 것은 다르다는 거죠. 그래서 수입을 로그로 변환해서(즉 원래 수입에서 몇 배 늘었냐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연구자들도 있죠(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몸 값이 일정 숫자 이상 오르면 더 이상 행복이 유의미하게 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3]도 있습니다. 연구에 따라 다르기는 한데, 5만불에서 7.5만불 사이로 볼 수 있습니다. 단 주의할 부분은 어떤 종류의 행복이 오르지 않느냐는 것인데, 이 부분은 좀 더 후에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그리고 몸 값과 행복의 관계는 개인간에서보다 국가간 비교에서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벨 경제학을 받은 카네만 교수는 사람들이 돈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이야기 합니다[4]. 그리고 돈 외에도 (혹은 돈보다도 더) 행복에 중요한 것들이 있다는 연구가 많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사회적 관계입니다. 예컨대 하버드 대학 공공정책 대학원의 로버트 퍼트남 교수는 좋은 결혼 생활이 임금이 네 배로 오르는 것에 상응하는 행복 증가를 가져다 줄 수 있고, 좋은 친구를 사귀면 급여가 세 배 오르는 효과가 있으며, 동아리에 소속되면 급여가 두 배 오르는 효과, 심지어 일년에 소풍을 세 번 가는 것으로도 급여가 10% 오르는 효과가 있다고 말합니다[5].

앞에서 얘기 했던 어떤 종류의 행복이냐 하는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학자들은 행복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지적 부분과 감정적 부분입니다. 인지적 부분은 "너는 자신의 삶이 전반적으로 얼마나 행복하고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냐?"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측정하고 감정적 부분은 "너는 어제 하루 얼마나 웃고 즐거웠고 얼마나 슬프고 걱정하고 스트레스 받았냐?"하는 질문의 답으로 측정합니다. 전자는 삶의 평가이고 후자는 감정적 웰빙입니다. 45만 개 이상의 응답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3] 양자는 다른 개념이며(즉, 삶을 더 성공적으로 평가한다고 해서 어제 감정이 더 긍정적이라고 말 못하고), 몸 값은 삶의 평가와는 관련이 있으나, 감정적 웰빙과는 큰 관련이 없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몸 값이 높아진다고 해서 하루 하루 행복한 감정을 더 많이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자신의 삶을 더 성공적이라고 평가할지언정(더 명확히 말하자면, 수입이 일정 이상 오르면 감정적 웰빙은 증가하지 않고, 대신 삶의 평가는 오릅니다). 만약 자신이 몸 값을 올리려는 이유가 하루 하루 더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겠죠. (반대로, 앞에서 이야기한 소득수준이 안되는 분의 경우 몸 값이 올라가면 감정적 웰빙도 좋아질 수 있습니다!)

사실 몸 값이 높아져서 얻는 행복감이 있기는 하지만 금새 사라져 버린다는 연구도 많이 있습니다[6]. 예컨대 복권에 당첨되고 얼마만에 원래 수준의 행복감으로 돌아가느냐 같은 연구를 보면 사람들의 기대와 차이가 크죠. 이런 것을 쾌락 적응이라고 합니다. 직장 내에서 승진을 하는 등의 좋은 사건도 1년 내에 원래 수준으로 만족도가 돌아가 버린다는 연구도 있습니다[7]. 그 이유는 그 수준에 적응하면서 거기에서 욕구가 더 커지기 때문이죠. 더 나아가서 몸 값이 높아져서 손해보는 면도 있습니다[8][9]. 몸 값이 오르면서 동시에 다른 것도 변하기 때문인데요, 예컨대 시간에 대한 압박이 심해지고 스트레스가 커지고, 가족이나 배우자에 시간을 덜쓰게 되고 등. 그래서 정작 행복감을 높여주는 활동은 더 줄어들게 되기도 하죠. 그래서 학계에는 경력 성공과 개인적 실패 효과(Career Success and Personal Failure Effect)라는 말도 있습니다. 특히 객관적 경력 성공을 중요시 여기고 야망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이 효과에 취약하다는 연구도 있는데, 그 이유는 "성공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주문을 외우면서 개인적 실패(더 외롭고, 더 스트레스 받고, 가족이나 친구 관계가 나빠지고 등)를 허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0].

자 이제 앞에서 이야기한 객관적 경력 성공과 주관적 경력 성공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일단 객관적 경력 성공에 한계가 있습니다. 약 7년 경력 이후에는 객관적 성공 속도가 둔화되기 시작합니다(curvilinear). 아무래도 피라미드 위로 갈수록 더 좁아지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초기에 빨리 오른 사람(직위건 임금이건)일수록 후기에 둔화가 더 심합니다. 빨리 출세한다고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거죠.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객관적 성공과 주관적 성공의 관계입니다. 1400명 가까운 전문직 종사자의 종단 연구를 통해, 객관적 성공이 주관적 성공에 영향을 별로 미치지 못하더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주관적 성공은 차후 객관적 성공에 영향을 미칩니다. 쉽게 말하자면 몸 값이 오르거나 직위가 오른다고 해서 내가 주관적으로 직무에 얼마나 만족하냐가 높아지지 않지만(그러나 다른 사람과 상대 비교해서 내가 더 성공적이라고 하는 주관적 평가는 높아짐 -- 그러나 이런 요소를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삶에서 불행감을 더 느낀다는 연구가 있음), 반대로 내가 주관적으로 직무에 얼마나 만족하냐가 차후에 내 임금이나 직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겁니다[11].

사실 이런 주관적 성공, 즉 현재의 만족감, 행복감이 객관적 성공, 즉 임금이나 직위에 선행한다는 연구 결과는 많이 있습니다. 긍정 심리학의 권위자인 류보머스키의 메타 분석은 225개 연구를 종합 분석했습니다. 거기에 따르면 더 만족하고 행복한 사람이 31% 더 생산적이고, 37% 매출이 높고, 창의성이 3배 높다는 결론을 내립니다[12]. 돈 벌어서 행복해져야지 전략보다 행복해져서 돈 벌어야지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성공한 개발자와 행복한 개발자"라는 기사를 쓴 적이 있으니 참고하시고요. 이 주제로 나온 Happiness Advantage라는 책도 일독을 권합니다.

이번에는 사람들이 몸 값을 올리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다들 인정하시겠지만 몸 값을 올리는 가장 효과적 방법은 "회사 옮기기"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교수인 보리스 그로이스버그(Boris Groysberg)의 연구들[13]이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그로이스버그는 거의 평생을 이 주제에 대해 천착해 오고 있습니다. 일단 그는 회사를 옮겨도 사람의 퍼포먼스가 유지되는가 하는 화두를 갖고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우선은 이 "재능 이식성"(Talent Portability)이 가장 높다고 이야기되는 월가 분석가들을 대상으로 연구했습니다. 분석가는 회사를 옮길 때에 지역적으로 거의 이동이 없고(옆 건물로 옮긴다든지) 자신의 고객이나 투자대상 기업을 가지고 옮깁니다. 분석가들의 85%가 재능 이식성이 있다고(즉 나의 성과는 회사와 독립적이다) 스스로 평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로이스버그의 오랜 기간 연구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적어도 이직 후 5년까지는 전 직장의 퍼포먼스로 회복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성공의 원인에서 개인적 부분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인적 사회적 자원(Human, social capital)을 무시한다는 겁니다. 분석가처럼 독립적으로 일하는 듯 보이는 직업도 실은 예전 회사의 인맥과 자원에 큰 의존을 하고 있었다는 거죠. 분석가처럼 재능 이식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직업에서도 그렇다면 다른 직업은 그보다 더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그로이스버그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회사를 옮길 때에 몸 값에 집중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변수를 무시하게 된다고 합니다(앞서 이야기한 "성공에는 대가가 따르지" 같은 주문과 비슷해 보이죠). 예컨대 옮겨갈 조직의 문화 같은 것이죠. 그러면 옮겨서 제대로된 퍼포먼스를 내기가 더 어려워지고(사실 문화가 퍼포먼스를 좌우하는 부분이 매우 큽니다), 새 직장에 대한 만족도도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통상 그쪽 회사의 기대는 큰데(돈을 올려줬을 것이므로) 퍼포먼스가 기대보다 못하니 그 회사는 실망을 하겠죠. 게다가 동료나 상사, 부하 등의 사기가 떨어지는 효과도 관찰되었습니다. 나보다 돈 많이 받는 것 같은데 일을 잘 못하니 그럴만도 하죠. 그러면 자신은 더 압박을 받고, 위축되고, 주변의 도움도 못받고, 결과적으로 퍼포먼스가 더 떨어집니다. 그러면 그 때 또 다른 이직을 알아보려고 할 수도 있겠죠.

정리하자면, 몸 값 올리기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직장 옮기기가 사실 (불행해질)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죠. 그로이스버그의 연구에서 이런 재능 이식성을 높이는 방법으로 제안되는 것은 (내외부) 인적 사회적 관계에 더 많은 관심 노력을 기울이고 이직시 문화를 고려하고 이직할 때 다른 사람과 함께 이직하는 것 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재능 이식성을 높이는 회사의 전략(이번에 입사지원자 중 이식성이 높은 사람을 가리기, 혹은 뽑은 사람의 이식성 높여주기 등), 개인의 전략(이 회사에만 종속되지 않고 다른 회사로 옮겨도 퍼포먼스가 잘 나오게 미리 준비하는 방법, 새로운 회사에서 빨리 퍼포먼스를 내는 방법 등)이 더 있는데 이건 다른 주제이니 다음 기회에... ^^;


그래서 이 강의의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0) 몸 값이 안오르는 상황에서도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1) 몸 값 올려서 하루 하루 더 만족하고 더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전략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할 수 있다
2) 몸 값 올리고 싶으면 몸 값 올리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지금 상황에서 행복하게 일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
3) 몸 값 올리는 방법으로서의 이직은 위험성이 높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습니다. 시간상 두 가지를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일상에서 행복감 높이기이고, 다른 하나는 잡 크래프팅(Job Crafting)입니다.

일상에서 행복감 높이기는 RCT 등을 통해 실험적으로 검증된 것 몇 가지만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14].


감사일기 쓰기
남 도와주기
감사편지 쓰기 등


감사일기 쓰기는 오늘 하루 고마운 사람, 고마운 것, 고마운 일 등에 대해 일기 쓰듯이 기록하는 겁니다. 5분이면 충분합니다. 이것 하나만 해도 행복감이 높아집니다. 남 도와주기도 어찌보면 시시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게 매우 강력합니다. 남이 나를 도와주는 것보다 내가 남을 도와줄 때 통상 행복감이 더 증가합니다. 남 도와주기가 자선단체에 거금을 낸다거나, 어디 봉사활동 간다거나 하는 거창한 것만 있는 건 아닙니다. 근처에 앉아 일하는 동료 얼굴이 피곤해 보입니다. 커피 한 잔 뽑아서 가져다 주면서, "많이 힘드시죠" 하는 것도 남 도와주기입니다. 이렇게 하면 내 행복감이 증가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편지 쓰기는 내가 고마워하는 사람에게 간단하게 메모로 혹은 이메일로, 또는 문자나 메신저로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이상 세가지는 실험을 통해 행복감을 증가시킨다고 입증이 된 방법들입니다. 이런 소소한 행동들로 당장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다고 생각이 들겁니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업무 자체랑은 괴리된 느낌이 들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잡 크래프팅을 같이 소개드립니다.

잡 크래프팅은 개인이 자신이 받은 업무를 스스로 재설계하는 걸 말합니다. 내가 직장내에서 받은 권한과 책임 내에서 사실 잘 보면 자유도가 많이 있기 때문에 재설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잡 크래프팅이 있습니다.[15]

작업 크래프팅
관계 크래프팅
인지 크래프팅


작업 크래프팅은 내 업무의 범위를 늘이거나 줄이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블로그에 "당신이 제자리 걸음인 이유"라는 글을 썼는데 그 글의 내용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시> 관계 크래프팅은 업무하면서 만나는 사람을 내가 선택하는 겁니다. <예시> 인지 크래프팅은 자신의 일에 새로운 프레임을 씌우는 겁니다. <예시>

연구에 따르면 이런 잡 크래프팅을 통해 "개인"이 업무의 의미를 찾고 몰입감을 높이며 직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업무에서 작은 진척을 만드는 것이 직무 동기를 높이는 가장 강력한 변수라는(인센티브나 인정보다도 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16]

이제 위 결론에 두 가지를 더 추가할 수 있겠군요.

4) 일상에서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방법들이 있다
5) 잡 크래프팅을 통해 내가 하는 일에서 의미와 동기,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긴 시간 강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질문이 있으신가요?


[0] Diener, E., & Biswas-Diener, R. (2002). Will money increase subjective well-being? A literature review and guide to needed research. SIR, 57, 119.69.
[1] Diener, E., Sandvik, E., Seidlitz, L., & Diener, M. (1993). The relationship between income and subjective well-being: Relative or absolute? Social Indicators Research, 28, 195-223.
[2] Deaton, A. (2008). Income, health and well-being around the world.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 22, 53.72.
[3] Daniel Kahneman and Angus Deaton (2010). High income improves evaluation of life but not emotional well-being PNAS 107 (38) 16489-16493
[4] Daniel Kahneman, Alan B. Krueger, David Schkade, Norbert Schwarz, and Arthur A. Stone (2006). Would You Be Happier If You Were Richer? A Focusing Illusion, Science 312 (5782), 1908-1910.
[5] http://chqdaily.com/2013/07/23/putnam-strongest-predictors-of-happiness-are-social-relationships/
[6] Gilbert, D. (2006). Stumbling on Happiness. New York: Knopf.
[7] Boswell, W. R., Boudreau, J. W., & Tichy, J. (2005). The relationship between employee job change and job satisfaction: the honeymoon-hangover effect,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90, 882.92.
[8] Ng, W., et al. (2008). Affluence, feelings of stress, and well-being. SIR, 57, 119.69.
[9] Qouidbach, J., et al. (2010). Money giveth, money taketh away: the dual effect of wealth on happiness. PsychScience, 21, 759.63.
[10] Abraham K. Korman, Ursula Wittig-Berman, and Dorothy Lang (1981) Career Success and Personal Failure: Alienation in Professionals and Managers, ACAD MANAGE J 24:2 342-360; Burke, R. A. and E. Deszca (1982) Career Success and Personal Failure Experiences and Type A Behaviour, Journal of Occupational Behaviour, 84:76-79.; Burke (1999) ; Bartolome and Evans (1980)
[11] Abele, A. E. and Spurk, D. (2009), How do objective and subjective career success interrelate over time?. Journal of Occupational and Organizational Psychology, 82: 803–824. 
[12] Lyubomirsky, King, and Diener (2005) benefits of frequent; Staw, Sutton, Pelled (1994) Employee positive emotion and favorable outcomes at ; Diener, Nickerson, Lucas, and Sandvik (2002) Dispositional affect 
[13] Groysberg, B. Chasing Stars
[14] Nelson, Lyubomirsky (2012)
[15] Berg, Dutton, Wrzesniewski (2013)
[16] Teresa Amabile (2011) The Progress Principle

강연 후에 누가 묻더군요. 개발자 처우, 사회적 구조와 부조리 이런 부분은요? 아, 중요한 부분이죠. 제 강연에서 그런 요소를 부정하고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 강연에서는 단지 그 부분들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저 역시 그런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동시에 개인적이고 사회적 차원에서(최근 공공정책 부분에서 긍정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점차 반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 강연 내용과 같은 부분에 대한 고려도 함께 진행되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3/12/26 19:16 | 트랙백 | 핑백(1) | 덧글(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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