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는 일들을 절반의 시간 안에 해야 한다면?
며칠전 AC2 교육을 받고 있는 분과 이미 받은 분들이 함께 소통하는 메일링리스트에 좋은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지금 하는 일들을 절반의 시간 안에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현실적 질문이었는데요. 제가 나름 답을 달아봤습니다.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여기에도 공유를 하려고요.

제가 사용해 본 방법인데, 대략 300%의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결과는 놀랍습니다. (참고로 이 방법은 예전에 쓴 "창의성의 아이러니"에 나온 여유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입니다)

예컨대, 1시간 단위로(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이 단위시간은 달라야할텐데, 보통은 1시간을 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일을 계획해서 하고요, 1시간 돼서 알람 울리면 무조건 스톱합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상관없이 스톱합니다. "아, 5분만 더하면 끝날텐데" 같은 거 알짤 없이 말이죠. 그리고 애초에 1시간 내에 끝내기로 한 것이 실제로 1시간 지났는데도 안 끝나면 무조건 다음 선택지 중에서 골라야 합니다. 하던 걸 이어서 마저 한다는 무조건 없습니다(5분만 더하는 것도 안됨).
  • 하던 일은 내버려 두고 일단 다른 일을 1시간 동안 한다. 더 우선순위가 높은 일로 선택하는 것이 핵심. 하던 일은 아예 안하거나 아니면 나중 시점에서도 중요하면 하거나. 흥미로운 점은 더 우선순위가 높은 일을 하다 보면 아까 하던 일은 안해도 되는 일이 되는 경우가 허다함(다음에 나오는 세가지 질문 묻기랑 병행).
  • 하던 일은 그만두되, 그 일로 성취하고자 하는 결과(outcome)를 생각해서 전혀 다른 접근법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X라는 도구를 기본설치하는 데 1시간이면 되겠다 생각해서 했는데, 개고생을 하고 한 시간해도 마치지 못한 경우, 내가 X를 설치해서 얻으려던 것이 뭔가를 생각해 보고 전혀 다른 접근법(예컨대 도구 없이 수작업으로 하거나, 1시간 내에 되는 다른 도구를 하거나 등)을 생각해 내야 함.
  • 다른 사람과 상의한다.
무조건 1시간을 초과하면 위 세가지 중에서 고릅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예상외로 오래 걸리는 "삽질"들인데, 이 방법을 쓰면 삽질을 엄청나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시간짜리 일을 완료했냐 아니냐 여부에 관계없이, 1시간이 끊어지는 마디마다, 그리고 좀 더 큰 마디(예컨대 하루, 1주일 단위)마다 다음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 이 일 정말 꼭 해야하는가? 안하면 어떻게 되나? 회사에 그게 얼마나 중요한가? 를 여러번 반복해 묻습니다. 그래서 안해도 되는 일을 많이 쳐내는 것이 관건
  • 이 일 내가 꼭 해야하는가? 다른 사람이 해도 되나? 다른 사람이 하는 게 더 회사에 좋은가? 누구 도움을 받아야 좋은가 등을 여러번 묻습니다.
  • 이 일로 성취하려는 목표(outcome)가 무엇인가? 이걸 여러번 묻고, 더 값싸게 하는 방법은 없나를 묻습니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반드시 이 방법이어야 하는가를 여러번 묻습니다. 그러면서 대략 90% 이상 수준을 절반 이하의 비용으로 하는 더 값싼 방법을 찾습니다.
위 질문을 최소한 1시간 단위로 합니다. 즉 위에서 "이 일"은 1시간씩 하는 일에 대해 묻는 겁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하루나 1주 단위에서도 이걸 묻고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팁은, 이걸 팀 수준에서 실천하면 효과가 더 커집니다. 서로에게 위 질문들을 하고, 같이 답을 찾아보는 것이죠. 또 혼자 하면 중간에 끊기가 힘든데 남이 도와주면 스톱하기가 좀 가능해지기도 합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5/03/06 11:42 | 트랙백 | 덧글(3)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이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스티브 잡스만큼 인문학의 부흥(?)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일단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이고, 그 사람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했기 때문이죠.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의 효용가치를 스티브 잡스를 빌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인문학과 우리가 말하는 인문학이 동일하다는 전제이지요.

보통 우리가 말하는 인문학은 전통적으로 문사철, 즉 문학/언어, 역사, 철학을 말합니다. 그럼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은 무엇일까요? 통상 영어로 liberal art나 humanities를 인문학으로 번역하고 있긴 합니다만, 스티브 잡스가 그 단어를 어떤 의미로 썼는지 제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마음을 헤아릴 수야 없겠지만 잡스가 직접 했던 말에서 짐작을 해보는 것이 가장 근사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소위 인문학을 언급한 부분을 보자면, 세간에 공개된 것은 두 군데가 대표적인데요, 약간 의미 사용이 다릅니다.

첫번째는 최근 발견된 잃어버린 인터뷰(Lost Interview)에서 언급되는 부분으로 젊은 시절의 스티브 잡스(1995년도)가 프로그래밍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인문학(liberal art)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특히 이 부분인데요,

So I view computer science as a liberal art. ... It should be something that everybody learns, you know, takes a year in their life, one of the courses they take is, you know, learning how to program.

그래서 저는 전산학을 교양으로 봅니다. ... 그건 모든 사람이 배워야하는 것이고요, 뭐, 살면서 일 년 걸려 들어야 하는 수업 중 하나로, 프로그래밍 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죠. (번역은 김창준)


잡스는 이 인터뷰에서 컴퓨터 사이언스(잡스가 이 맥락에서는 프로그래밍과 같은 말로 쓰는 듯 합니다만 전산학자들은 프로그래밍과 전산학을 구분합니다)를 교양 과목 수준에서 모두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인문학(liberal art)은 그냥 교양이라는 정도의 번역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특별히 문학, 역사, 철학을 지칭하고 있지 않습니다. 문사철을 공부한다고 잡스가 말한 프로그래밍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두번째 부분은 비교적 많이 알려진 부분으로 2011년 제품 발표회의 한 장면입니다. 폴라로이드사의 공동설립자인 에드윈 랜드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히 드러납니다(자세한 내용은 월터 아이작슨의 잡스의 전기에 나옵니다).



... it’s technology married with liberal arts, married with the humanities that yields us the result that makes our hearts sing. ... they are talking about speeds and feeds ... that is not the right approach to this. ... even easier to use ... even more intuitive ... the s/w and the h/w and the applications intertwine in an even more seamless way ...

... 그것은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으로, 우리 가슴이 노래하게 하는 결과를 내주는 인문학과 결합하는 겁니다. ... 그 사람들은 속도와 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그것은 이런 일에 바른 접근법이 아닙니다. ... 훨씬 더 사용하기 쉽고 ... 훨씬 더 직관적이고 ...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애플리케이션이 훨씬 더 매끄럽게 엮이고 ... (번역은 김창준)


그가 생각한 인문학(liberal arts, humanities)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속도와 양에 신경 쓰는 것에 비해 제품을 더 쓰기 쉽고 직관적으로 만들고 총체적 경험을 만들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단순히 역사나 철학, 문학을 공부한다고(혹은 기술 배우고, 역사나 철학을 배워서 서로 버무린다고) 이런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런 일을 날마다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 화제가 되었던 인문학 논쟁의 김희원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에 대한 이해’이다. 이는 컴퓨터를 공부한다고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백 번 양보해서 잡스와 저커버그가 ‘천재’라고 가정하더라도 천재들과의 경쟁에서 취할 전략은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통한 번뜩이는 아이디어여야 한다. 이는 인문학 없이 나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삼성전자에서 인문학 전공자들을 대거 채용한 점은 오히려 기업이 현실을 더 잘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인문학이 "사용자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견 스티브 잡스의 말과 일치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인문학과 "사용자에 대한 이해"는 현실적으로 거리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공부한다고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할 때 컴퓨터를 공부하는 것의 범위를 어느 정도로 잡느냐에 따라 또 다른 말이 될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더 쓰기 쉽고, 더 직관적이며 총체적 경험을 가능케 하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전문성 연구에 따르면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심지어는 인접)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분야 한정성)이 거듭 밝혀졌습니다. 세계적인 생물학 전문가가 물리학에 대해서는 초보 수준이라든가 말이죠. 하지만, 과거에는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했고, 예컨대 라틴어 같은 것을 훈련하면 전반적인 사고 능력이 향상된다고 믿어서 그걸 배우고 가르쳤죠. 하지만 여러 연구를 통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단순히 문학, 철학, 역사에 밝다고 사용하기 쉬운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분야는 통상 UX(사용자 경험, User Experience)라고 부르는 매우 전문적 분야로 오랜 기간의 공부와 수련을 필요로 합니다. 신선한 착상으로 해결되는 수준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애플에서도 역사, 철학, 문학 전공자를 뽑아서 저런 일을 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궁금한 사람은 애플 구인 페이지에서 직무설명을 검색해보시길 권합니다. 예를 들어 Philosophy, Literature, History 등으로 검색했을 때 소위 인문학으로서의 그런 주제를 언급하는 직무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컨대 사용자 경험 설계자의 구인 직무 설명을 보시죠(2015/3/4 현재 시점. 향후 사라질 수 있음).


Description

...
Researching UI design and development techniques to find innovative and elegant solutions to complex UI problems
Designing application user interfaces (including information architecture and interaction design)
...

Education

BS or MS in Human Computer Interaction, Human Factors, Information Science, Graphic Design with emphasis on UI design, or Computer Science with emphasis on UI development


직무

복잡한 UI 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적이고 우아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UI 설계와 개발 기법을 연구한다
애플리케이션 UI를 설계한다 (정보 아키텍처와 인터랙션 설계를 포함)

교육

인간 컴퓨터 인터랙션(HCI), 인간공학, 정보 과학, UI 설계에 중점을 둔 그래픽 디자인, UI 개발에 중점을 둔 전산학에서 학사나 석사 학위

(원문 링크. 번역은 김창준)


자기 회사의 DNA에 기술과 "Liberal Arts"의 교차점이 있다고 하는 애플 조차도 인문학 전공자를 별도로 뽑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김희원씨가 언급한 삼성에서 인문학 전공자를 "대거" 채용했다는 부분은 잡스의 말을 지나치게 해석해 벌어진 해프닝일 수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그렇게 뽑은 인재들에게 결과적으로 무슨 직무를 맡기고 있냐 하는 부분이 되겠죠.

저는 이 글을 통해 인문학의 가치를 깎으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잡스가 더 좋은 제품을 만들려면 문사철을 한 인문학자를 뽑아야 된다는 수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해석하는 것은 확대 해석이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그가 통상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을 이야기할 때 그 맥락에서 "기술"은 성능과 기능 중심 사고로, "인문학"은 그 외적인 것, 편의성이나 심미성, 일상적 경험 속에서의 긴밀한 결합 등에 대한 추구 정도로 보면 되지 않나 싶습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5/03/04 13:34 | 트랙백 | 덧글(0)
통찰 : 평범에서 비범으로
제가 지난달에 을 한 권 번역해 냈습니다. 아래에 번역자 후기 초고를 옮깁니다.

안녕하세요. 이 책을 번역하게 된 역자입니다. 먼저 이 책을 번역하게 된 인연 이야기로 후기를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2010년 윌리엄 더건의 <전략적 직관>(Strategic Intuition)이라는 책을 읽고 그에 대해 개리 클라인과 이메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더건은 그 책에서 "전략적 직관"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개리가 연구해온 직관과는 달리 새로운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이었고, 좀 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었습니다. 개리는 더건이 말하는 "전략적 직관"을 자신은 "통찰"로 부르고 싶다고 말하며 이것이 중요한 주제이고, 그래서 더건과 협력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통찰이란 아이디어에 정말 흥분이 되었습니다. 개리의 연구를 제 일(개인과 조직이 성장하게 도와주는 일)에 좀 더 적용할 수 있는 잠재성이 훨씬 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에 싱가포르에서 통찰 관련해 워크숍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앞뒤 볼 것 없었습니다. 싱가포르로 가서 개리를 직접 만났고 그와 함께 최근 연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걸 계기로 접한 것이 그의 "통찰의 자연주의적 연구"(A Naturalistic Study of Insight)라는 논문이었습니다. 지난번 더건의 책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더 발전시킨 것이었습니다. 그 논문은 저에게 많은 통찰을 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2013년 4월(이 책은 당해 6월 출간), 개리와 이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일전에 그의 한국어 번역물들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바 있었는데, 이번엔 그가 저에게 번역을 권했습니다. 영광스러운 기회라고 생각했고 또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개리의 연구에 대해 정말 제대로 아는 사람이 번역을 해야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있었죠. 그래서 개리가 에이전트를 통해 국내 번역 판권을 가진 출판사에 저를 추천했고 몇가지 우여곡절을 겪은 후 제가 번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개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훨씬 예전입니다. 개리를 (간접적으로) 만난 것은 그의 첫번째 저술인 <Sources of Power>(<인튜이션>으로 번역)을 통해서였습니다. 2001년이었네요. 그 책은 참으로 재미있었고, "여기에 뭔가 중요한게 있다"는 느낌을 줬습니다만 제 일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러고는 2006년 그의 <Power of Intuition>을 읽었고, 2009년 초에는 <Working Minds> 그리고 2009년 9월에 <Streetlights and Shadows>(<이기는 결정의 제1원칙>으로 번역)를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 사이에는 그가 쓴 논문과 보고서들을 찾아서 탐독했지요. 이렇게 그에 대한 관심은 점차 자연주의 의사 결정 학파 전체로 넓어지게 되었고, 관련 연구를 더 심층적으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의 연구를 제가 하는 일 전반에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주의 결정 분야에 대한 저의 관심사는 제가 이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전문성 연구라고 하는 분야와 만나고 합쳐지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전문성 연구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무엇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전문가가 되는지를 연구하는 인지 심리학의 전문 분야입니다.

이렇게 제 머리 속에서 자연주의 의사 결정과 전문성 연구라는 주제가 서로 맞잡게 된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휴리스틱과 편향 연구자들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밝히고 그들을 조소하기 위해 애쓰는 듯 보였습니다. 이에 반해 자연주의 의사 결정 연구자들은 전문가들이 얼마나 놀라운지 밝히기 위해 애쓰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전문성 연구에서는 후자와 비슷하게, 전문가의 능력은 분명 차별성이 있으며 대단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렇게 되는 독특한 과정을 중요하게 연구합니다.

특히, 이 전문성 연구에서 근래 주목을 받는 주제 중 하나는 적응적 전문성(adaptive expertise)입니다. 이는 반복적 전문성(routine expertise)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반복적 전문성이 한 가지 작업을 계속 반복하여 전문가가 되어 동일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더 빨리, 또 실수가 적게 수행하는 걸 말한다면, 적응적 전문성은 기존에 접하지 않은 문제 상황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내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능력을 말합니다. 저는 개리의 직관 개념이 반복적 전문성에는 잘 들어맞지만, 적응적 전문성과는 뭔가 딱 맞는 느낌이 안 들어서 이에 어울리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개리의 통찰에 대한 연구를 만나면서 몇가지 힌트를 얻었습니다 -- 적응적 전문성은 통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연구를 잘 버무려서 제가 하는 일인, 조직과 개인이 스스로를 성장시키게 돕는 일에 적용하게 되면 큰 진전을 이룰 수 있겠다 싶었고 여러가지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통찰과 전문성 연구를 제 일에 적용했던 사례를 하나 소개하자면, 모 통신사 전화 고객상담 센터에서 컨설팅하던 때에 있었던 일로, 전화상담사가 상담 중에 통찰을 얻게 도와주는 실험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고객이 어떤 문제가 있다고 전화를 했을 때 그 이유가 고객 자신은 물론 상담사도 전혀 생각 못 한 것일 수 있는데, 이런 통찰을 증진시켜주는 교육을 하고 그 효과를 대조군을 두어 검증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고객이 통화가 안 된다고 불평을 하는데, 사실은 전화기가 비행기 모드일 수 있다든지 하는 발상은 통찰이 필요한 것입니다. 실험 결과 이런 통찰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은 개인차가 있으며(뛰어난 전문가가 있으며) 또 그 능력을 훈련을 통해 증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통찰과의 연결성을 탐구해 왔습니다. 전혀 동떨어져 보이는 연구들인데 사실 통찰과 맞닿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 중 몇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의 사회 심리학 교수인 제임스 펜베이커(James W. Pennebaker)는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글을 쓰는 것(저널, 일기, 에세이 등)의 효과를 연구했습니다. 연구 결과 글쓰기는 면역기능이 강화되며, 혈압이 떨어지고, 우울감이 줄어들고 기분이 좋아지며, 정신/육체적 건강의 전반적인 향상이 있고, 부부관계도 좋아졌습니다. 이런 효과는 200개가 넘는 연구를 통해 검증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들 간에 이런 글쓰기의 효과에 차이가 있다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 더 이득을 보는가를 알기 위해 사람들이 쓴 글을 컴퓨터로 분석했습니다.

그의 발견 중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첫째 주된 대명사가 자주 바뀌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예를 들면, "나"로 시작하는 문장이 많다가 "그녀는"으로 바뀌고 다시 "나"로 바뀌고 하는 식으로 글을 쓰는 도중(혹은 여러 날에 걸쳐 글을 쓰면서) 시각이 다양하게 바뀔 수 있으면 그 글을 쓴 사람은 정신적/육체적 이득이 더 컸습니다. 또 하나는 인과관계 단어와 자기반성적 단어의 사용 증가입니다. 인과관계 단어란, "왜냐하면", "그 결과", "그이유는" 등을 말합니다. 자기반성적 단어란 "생각한다", "믿는다", "깨닫는다" 등을 말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인과관계 단어나 자기반성적 단어가 많냐가 아니라, 점점 증가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즉, 점차적으로 자기 경험에 대한 의미있는 이야기를 구축해 나가는 의미형성(sensemaking)의 경우에 거기에서 얻는 정신적/육체적 이득이 크다는 겁니다.

저는 이 연구결과가 통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특히 자신의 경험에 대한 통찰 말입니다. 통찰을 얻으려면 결국 새로운 이야기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시각으로 상황을 해석해야 합니다.

심리상담의 경우를 보면, 근래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심판근거 인지치료(Trial-based Cognitive Therapy)가 통찰이라는 면에서 흥미롭습니다. 심판근거 치료에서는 내담자가 자신을 피고로 두고, 변호사, 검사, 판사, 그리고 피고 자신의 역할을 돌아가며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연구를 통해 이 치료 방법이 내담자의 생각을 전환하게 하는 데에 (통상 자신이 갖고 있던 자동적 사고와 핵심 믿음을 더 유연한 것으로 바꾸는 데에) 효과가 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역시 많은 근거로 뒷받침 되고 있는 동기면담(Motivational Interviewing) 경우, 양가감정(ambivalence)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상담법은 중독 치료에서 발전된 것인데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인 사람에게는 술을 먹고 싶은 마음과 끊고 싶은 마음이 공존합니다. 이걸 양가 감정이라고 하며, 이 양가 감정에 대해 내담자가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 통찰이 생기고 결심이 서며 추후 행동변화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반면 술을 끊어야 할 이유에 대해서만 상담이 진행되면 내담자는 강하게 저항을 하게 되어 추후 실제적인 행동변화나 유지로 이어지지 못합니다.

제가 예를 든, 펜베이커의 연구나 심판근거 치료, 동기면담 등 모두 통찰에서의 다양한 시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을 볼 때에, 세갈래 경로 모형 자체가 우리에게 다양한 시각을 주어 통찰을 도와주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세갈래 경로 모형에서 어느 경로가 이 상황에서 나에게 통찰을 줄 것인가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것은 통상 사후에 알게 되는 것이죠. 그럴 경우에 저는 이 세 가지 경로 모두에 가능성을 열어 두고, 다양한 시각과 경로를 함께 고려해 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점을 생각하면서 14장 "우리 자신을 돕기"를 보시면 좀 더 와닿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조직 수준에서 통찰을 진작하는 것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오랫동안 조직을 컨설팅 하면서 느낀 것은, 개리가 말했듯이 많은 조직들이 완벽성 함정에 빠져서 실수를 낮추는 화살표에만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의 마이클 프레제(Michael Frese) 교수의 실수 연구를 엿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실수에 대해 두 가지 문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실수 예방과 실수 관리가 그것인데요, 실수 예방은 실수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실수 관리는 실수는 어떻게든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며, 그렇기에 실수를 일찍 발견하고 빨리 교정하여 부정적 결과를 줄이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 결과 실수 예방은 실수에 대해 비난하고 그걸 감추는 문화가 생기며, 실수 관리는 실수를 공유하고 거기에서 학습하는 문화가 생깁니다. 관련 연구를 보면, 조직의 문화가 실수 관리에 가까울수록 조직의 혁신성이 높으며 수익률도 높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저는 이 실수 관리 문화와 실수 예방 문화의 짝이 퍼포먼스 공식의 위 화살표와 아래 화살표의 관계랑 유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실수 예방 문화에서 실수 관리 문화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제 경험을 미루어 보면 사람들이 통찰을 갖게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고 강제한다고, 또 공식적 규정을 추가한다고 해서 문화는 바뀌지 않습니다. 조직이 바뀌려면 결국 사람들의 생각과 믿음이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15장 "남을 돕기"는 16장 "우리 조직을 돕기"를 위해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통찰 능력을 높이기 되기 위해서는 접하는 통찰들을 분석하고 자신의 통찰 프로세스를 개선해야 합니다. 단순히 반복한다고 해서 고수가 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양치질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수십년 반복해 올 뿐이지 자신의 양치질을 의도적으로 분석하고 개선하는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십년 매일 반복했어도 실력이 거의 늘지 않는 것입니다. 전문성 연구에서는 이렇게 자신의 수행을 분석하고 약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의도적 수련"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거의 분야를 막론하고 이 의도적 수련이 필수적임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통찰에 대한 의도적 수련을 만들어 나날이 계속하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참고로 저는 자신의 통찰을 기록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런 통찰 저널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관련해서는 17장 "통찰 사냥꾼이 되기 위한 팁"이 도움이 많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번역 과정에서 고마웠던 분들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번역문을 교정하고 다듬어 준 아내 남승희씨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 수고에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글이 훨씬 읽기 좋아졌습니다. 또 오랜 기간 인내심을 갖고 번역을 기다려준 출판사의 박나미, 김효선님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과 용어가 등장하는 책인지라 감수를 도와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의료와 생물 분야는 서울대학교 RNA 생물학 연구실의 장혜식 박사가 감수를 해주었고, 군사 및 정보 분야는 국내 아마추어 군사학 연구자로 정평이 나있는 삼성경제연구소 채승병씨가 감수를 꼼꼼하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채승병씨 경우는 원서에 나온 나폴레옹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 오류를 찾아내 주어, 저와 개리, 콜롬비아 대학의 윌리엄 더건(William Duggan) 교수, 해군 대학의 브루스 구드문선(Bruce Gudmundsson) 교수, 또다른 아마추어 군사학 연구자인 민신현씨 등과 함께 오랜 기간 논의를 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개리가 해당 장의 내용을 상당 부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성심을 다한 감수 과정에 감사드립니다. 또 번역 과정 중 원서의 자잘한 오류를 몇 가지 수정하기도 했는데 바쁜 일정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준 개리에게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귀한 책을 준 개리 클라인에게 늘 스승으로 또 동료로 감사해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저와 마찬가지로 이 책과 개리를 통해 통찰로 가는 길들을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4년 11월 24일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5/02/24 11:54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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