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지만 누군가 해야하는 일
모든 조직을 보면 "하기 싫지만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프린터나 팀 서버 관리, 회의록 작성, 가습기 물 채우기, 신입사원에게 회사 시스템 알려주기 같은 것들 말이지요.

이런 것들은 통상 회사 매뉴얼에 적혀있지 않은 비공식적인 것들입니다. 그런데 한 조직의 문화가 어떤가 보려면 사규나 조직도 같은 공식적인 부분보다 이런 비공식적인 부분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비공식적인 것들이 오히려 회사의 문화를 더 확연히 보여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하는 척"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에서는 이런 하기 싫지만 해야하는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방식이 드러내는 여러분의 조직 문화는 어떤 것인가요?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일이 터집니다. 그러면 그 사건이 발생할 때 불행히도 시공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이 책임을 지고 수습을 합니다. 간혹 이런 것에 신경쓰는, 혹은 그 일이 방치되는 걸 못견디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도맡아서 하게 됩니다. 그러면 목 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식으로 정당화하게 되고, 나중에는 아예 공공연히 그 사람의 업무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아, 그거 아무개 대리님 일이에요.

수직적 문화에서 이런 일은 막내를 시킵니다. "자질구레한 일은 막내에게"가 구호가 되겠죠. 가장 직급이 높은 사람이 안쪽에 앉고 제일 막내가 복도 쪽에 앉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지요. 이렇게 막내가 하다가 신입이 들어오면 막내는 자기 자리를 졸업할 때가 되어 신입에게 인수인계를 하겠지요. 우리나라 군대가 이 방식으로 돌아가는 대표적인 집단인 것 같습니다.

공정함을 중요시하는 문화에서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하거나 한 명씩 돌아가면서 그 일을 합니다. 그 일이 하기싫고 괴롭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누군가 한 명은 괴로워야 한다면 공평하게 괴롭게 하자는 원칙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내는 방법이 이겁니다. 조금 더 수직적인 조직에서는 윗사람이 우리는 이 일은 돌아가면서 한다, 혹은 가위바위보로 정한다라고 선언을 하는 식입니다.

앞서의 문화들과 달리, 집단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난 조직에서는 이 문제를 개인의 문제(하는 사람이 참고 해야 한다)로 보지 않고 집단의 문제(왜 우리에게 이런 문제가 생겼는가)로 봅니다. 즉, 누군가는 지루하고 귀찮은 일을 해야한다는 상황 자체를 문제로 봅니다. 인간의 본성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해야할까로 회의를 하는 게 아니라 꼭 해야하는 일인가, 그렇다면 일을 어떻게 하고 싶게 변형할까로 회의를 합니다.

제가 있었던 모 팀에서는 한 번은 저를 포함 몇명의 제안 하에 이에 관련된 회의를 했습니다. 귀찮지만 누군가가 해야하는 일이 있는데 누구 한 사람이 그걸 맡아서 한다는 것이 내키지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 참고로 이런 것을 팀 잡 크래프팅(team job crafting)이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개인의 업무에도 적용할 수 있는데 재미있게 공부하기당신이 제자리 걸음인 이유를 참고하세요)

우리는 우선 그런 일들을 주욱 나열해봤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우리팀에 중요해서 꼭 해야만 하는 것들을 추려냈습니다. 그 다음, 그 일들을 좀 덜 괴롭고, 좀 더 재미있게 변형하는 브레인스토밍 회의를 했습니다.

예를 들어 회의록 남기기 같은 경우는 "회의 끝나고 그 회의실에 두 사람이 남아서 짝 프로그래밍 하듯이 서로 협력해서 기록을 남기되, 10분 안에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회의기록을 정리하고 바로 이메일로 공유한다" 같이 말이죠.

이런 경험들을 하게 되면 집단의 자기 효능감이 증가하게 됩니다. 그래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면 더 잘 할 수 있어, 하는.

이렇게 작업 재설계를 할 때 다음 과정을 거쳤습니다.
  1. 우리가 꼭 해야하는 일인가를 여러번 묻습니다.
  2. 통과하면, 이 일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는 효과(outcome)는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3. 그 효과를 얻는 다른 방법을 찾습니다.
그리고 위 세번째 단계에서 일을 변형할 때 다음과 같은 요소를 고려했습니다.
  • 빠른 피드백을 증가시킨다
  • 자율성을 증가시킨다
  • 좀 더 일을 다채롭게 만든다
  • 누군가에게 가치를 주는 게 더 잘느껴지게
  • 부분보다 전체를 하게 한다
  • 일을 하면서 좋은 협력 관계를 갖게 한다
  • 장기적 이득이 단기적으로 의미가 있게 한다
위 요소들은 조직행동론에서 직원들의 직무만족도와 업무성과를 높이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혹자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재미없는 일을 참으면서 해야 실력이 느는 것이다. 하지만 여러 경영학과 심리학 연구의 결과는 반대 방향에 더 가깝습니다.

즉, 자신이 맡은 직무를 자기 맘에 들게 변형해서 하는(잡 크래프팅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성장이 빠르며 업무 성과도 높다는 것이고, 또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난 후에 성과가 더 좋아지더라는(즉, 만족도가 성과에 선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조직 문화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렇게 힘들고 귀찮은 일이 있으면 팀원들이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상의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나가는 문화 이것이 바로 제가 생각하는 소문자 애자일(Agile과 agile)의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분들의 조직 문화는 어떻습니까?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7/07/12 14:47 | 트랙백 | 핑백(2) | 덧글(2)
문재인 대통령의 회의 방침


문재인 대통령이 회의 방침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영상을 봤습니다. 이 영상이 최근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된 것 같습니다. 관련해 기사도 났습니다. 영상에 나오는 문 대통령의 발언 중에 정말 "대단히 중요"한 내용들이 많이 나와서 아래에 그대로 옮겨적고 각주를 달아 봤습니다.

"수보 회의는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회의가 아닙니다. 다함께 공유하고 토론을 통해서 결정하는 회의......"(1)

비서실장: "대통령님의 지시사항에 대해서도 이견이 나왔을 때 얘기할 수 있습니까?"(2)

(일동 웃음)

"근데 그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3). 격의 없이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시는 그런 기회를 못갖게 되는 거죠. 잘못된 방향에 대해서 한번 이렇게 바로 잡을 수 있는 최초의 기회가 여긴데(4), 대통령 지시에 대해서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해야할 의무입니다(5). 그래서 인제 이렇게 될라 그러면 아주 격의 없는 토론이 필요한데, 미리 정해진 결론 없고(6), 발언에 군번도 없고. 대통령의 참모가 아니라 국민의 참모다, 그런 생각으로 자유롭게 말씀해주셔야 됩니다.

......

이 자리에서는 잘 모르면서 당당하게 하는 이야기까지도 하셔야 된다는 겁니다(7). 뭔가 그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냥 느낌이 조금 뭐 좀 이상하지 않냐 상식적으로 좀 안맞지 않냐 이런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해주셔야(8), 그야말로 자유로운 토론이 됩니다."


(1) 회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집단 지성으로부터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지 누가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곳이 아닙니다. 그럴 경우 회의보다 더 효과적인 방식이 많습니다. 굳이 회의의 흉내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서 공유하고 토론하는 형태가 효과적입니다.

(2) 비서실장이 회의 중에 이런 저돌적인 질문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함축적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이 앉아 있는 회의에서 어느 정도의 심리적 안전감이 보장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이 질문을 듣고 그 자리의 다른 사람들은 농담 정도로 생각하며 웃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은 달라 보입니다. 이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문재인이 이런 심리적 안전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것을 초기에 자신의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4) 뭔가 회의에서 결정이 나면 그 결정이 고치기 힘든 것으로 느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그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은 해당 결정이 불변의 것으로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그만큼 비용투자를 했다는 소위 매몰비용(sunk cost) 편향이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 일찍 오류를 감지하고 바로 잡는 것(early detection & quick recovery)이 유리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모범이 되어 사람들은 나중에라도 오류를 바로잡는 것을 덜 불편해하게 됩니다.

(5) 항공과 의료 쪽 중에 안전 면에서 어느 쪽이 더 앞섰을요까. 당연히 항공입니다. 전문가들은 항공이 수십년 앞서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항공연방청의 ASRS 데이터베이스 같은 자료의 누적 덕분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를 통계분석해보면 항공사고의 거의 대부분이 누가 해야할 말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옵니다(그건 기장님이 알아서 하겠지 같은). 항공 사고를 피하려면 사람들이 할 말을 해도 "되는" 정도가 아니라 할 말은 마땅이 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공적 팀의 요인에 대한 메타분석에서도 보면 소위 상호 퍼포먼스 모니터링이라는 요소가 중요하게 나옵니다. 이건 상대가 일하는 거에 대해 묻고 딴지 거는 걸 말합니다. 근데 이것은 좋은 팀이 되려면 해도 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이다. 남의 일에 관심 갖고 참견하는 것은 좋은 팀이 되는 데 팀원으로서 의무적인 요소입니다.

(6) 정해진 결론이 없는 회의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회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사람들이 회의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다고 느낄 때에도 회의를 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미리 데이터 수집을 다 하고 분석하고 결론까지 내서 회의를 하지 않으면 비난 받고 공격 받을까봐 두려워서 회의를 여는 골든 타임을 놓쳐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늦게 열리는 회의는 새로운 정보를 얻지 못합니다. 정해진 결론 없이 여는 회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뭔가 방향이 생기기 전에 일찍부터 회의를 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7) 잘 모르면서도 당당하게 이야기하려면 앞서 계속 이야기한 심리적 안전감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심리적 안전감은 내가 의견을 내거나 질문을 할 때 비난 받지 않으리란 믿음을 말합니다. 같은 병원 안에서도 이 심리적 안전감의 차이가 병동별 사망률을 예측합니다. 이걸 높이려면 우선적으로 높은 위치(이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심리적 안전감이 높다)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8) 잘 모르지만 느낌이 이상할 때 당당하게 이야기하라는 부분도 매우 중요합니다. 미 백악관의 전쟁상황실을 재설계한 인지심리학자 게리 클라인이 자신의 책 <통찰>에서 역설하는 부분입니다. 성과는 실수를 줄이는 것과 통찰을 늘리는 것이 합해져서 나타납니다. 하지만 많은 조직은 실수를 줄이려고 하면서 통찰까지 줄이느라 큰 사고를 당하게 된다는 것이 게리 클라인의 분석입니다. 통찰은 기본적으로 뭔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탐구를 계속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확실성을 초기 단계부터 강조하면 통찰은 사라집니다. 9/11 공격 두달 전에 이를 미리 감지한 FBI 특별 수사관은 몇 명의 아랍인 남성이 비행 교육을 받았지만 이륙과 착륙 교육을 빼먹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를 이상하게 여겼고,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했지만 확실하지 않은 정보라고 중간에 걸러져버렸습니다.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7/05/29 11:35 | 트랙백 | 덧글(2)
AC2 과정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신가요?


AC2 과정은 제가 2009년부터 진행해온 교육과정으로 조직과 개인 레벨에서 변화를 만들고 싶은 분들을 위한 과정입니다. 현재까지 200여명이 넘는 분들이 이 과정에 참여를 하셨습니다.

오는 목요일에 28기가 시작하게 되었는데요(아직 두 자리 남았습니다. 빨리 서두르세요!), 주변에서 AC2 과정에 대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번 글을 준비해 봤습니다.

AC2 과정은 경험적 학습(Experiential Learning, 한가지 예가 시뮬레이션입니다)의 요소가 크기 때문에 그 과정이 어떻다 하는 것을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과정에 신청하시는 경우를 보면 보통 배우자가 무조건 좋으니 가봐라고 등 떠밀어서 오거나, 혹은 직장 동료나 상사가 권해줘서, 친구가 권해줘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첫 날 이런 말씀들을 하시죠. "좋다고는 하는데 말로 설명을 잘 못해서 어떤 건지 모르고 왔어요"라고요.

그래서 저도 고민을 좀 하다가 AC2 과정을 겪은 분들 인터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묘사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래서 AC2 과정이 어떤 느낌인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해보고자 했습니다.



대상자는 작년 말에 26기로 참여를 하셨던 정성영님이신데요, 정성영님은 건강관리 앱으로 유명한 눔(Noom)의 직원이십니다.

인상적으로 꼽으신 순간이 총 세 군데인데 모두 흥미롭습니다. 제가 나름 제목을 붙여봤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이 교육은 4차원이다?!
  2. 퍼실리테이션을 비교하다
  3. 마인크래프트를 통해 본인의 리더십을 되돌아보다


자세한 내용은 꼭 인터뷰를 들어보시면 좋겠네요.

--김창준
by 애자일컨설팅 | 2017/04/17 20:49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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